병원에서 보낸 여름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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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거침없이 흐르는 땀. 굳이 누가 부추기고 싶지 않아도 한적하고 시원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름이다. 저마다 휴가계획을 세우는 이때, 수술 일정을 잡느라 바쁜 사람들도 있다.
오랫동안 치질로 고생해온 김대민씨(가명, 38세), 대기업 과장인 그는 접대차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괴로움에 몸서리를 치던 사람이었다. 음주 후 더 악화되는 치핵 때문이었다.

술 마신 다음날, 다른 사람들이 쓰린 속을 달랠 때 그는 불거진 치핵 덕분에 좌불안석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치핵은 어쩐지 함부로 드러내기에도 껄끄러운 질환.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연고를 사용해오던 김씨. 지난 봄 아찔함을 느낄 정도로 엄청난 출혈이 된 후 조심스레 대장항문과를 찾았다. 진단결과 내치핵 4기, 버틸만큼 버틴 상태였다.

배변을 부드럽게 도와주는 항문 안쪽 치핵이 잔뜩 늘어나 항문 밖으로 삐져나온 상태. 손으로 밀어 넣어도 좀처럼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배변 후 아무리 깨끗하게 닦아내도 변이 속옷에 묻는 느낌에 항상 찝찝함을 호소하던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수술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치핵수술은 고통이 심하다는 것과 입원기간이 부담스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시술법의 발달로 통증이 그리 크지 않을뿐더러 입원기간도 1박2일로 줄어들었다. 김씨의 경우, 밖으로 불거진 부분이 크지않아 PPH를 이용해 치핵을 절제했다.


치핵을 완전히 제거하는 PPH, 적용되는 범위가 한정
PPH(Procedure for prolapsed hemorrhoids)는 치핵을 잘라내는 도구의 일종으로 가장 최신 기법에 속한다.

직경 3.3㎝ 크기의 인공문합기라는 일회용 기계가 사용된다. 기존 치료법은 밖의 피부에서 치핵혈관이 나오는 부분까지 세로로 치핵을 절제한다. 하지만 PPH는 항문점막의 대부분을 가로로 즉, 환상으로 절제해 항문 안의 치핵은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통증신경이 없는 직장 점막만 제거하기 때문에 수술 후 통증이 적다. 일반적으로 하루 정도 입원을 권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입원없이 수술을 진행하기도 한다.

세상 만물에는 무엇이든 일장일단이 있는 법, PPH는 분명 좋은 치료법이지만 적용할 수 잇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 항문 안에만 있는 치핵(내치핵) 중 크기가 아주 크거나 밖으로 밀려나온 정도가 적은 경우에 유용하다. 외치핵이 크거나 심한 경우는 남아있는 치핵은 작아지면서 증상은 적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재발의 우려가 있다. 따라서 본인의 증상에 따라 전문의와 상의를 통해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핵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질환이므로 일단 발병한 후에는 하루라도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몇 가지 생활습관으로 치질을 치료,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치질을 치료, 예방하는 생활습관

- 좌욕 : 좌욕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항문부위의 혈액순환을 돕고, 괄약근 의 긴장을 해소시켜, 혈관분포가 많은 항문부위에 혈액이 고이면서 생기는 충혈현상과 조직의 부종을 감소시켜준다. 더불어 항문부를 청결하게 해 세균감염을 예방하며, 변에 의해 피부가 자극되어 생길 수 있는 피부염, 또는소양증 등을 예방한다.

한번에 5-10분씩 하루 3-4회 정도 약 40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엉덩이를 담근다. 소금이나 소독약 등을 타는 것은 항문을 자극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지 않다. 한편, 재래식 변기에 쪼그리고 앉듯 세수대야에 쪼그리고 앉아서 좌욕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피가 아래쪽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적당히 채운 후 들어가 앉거나, 낮은 의자나 좌변기에 좌욕기를 올려놓고 그 위에 앉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식습관 : 패스트푸드 위주의 식단은 금물. 패스트푸드는 지방과 단백질이 많아 열량은 높은 반면 섬유소는 부족하다. 장의 연동운동을 도와 장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섬유소가 부족하면 변비가 생기기 쉽다. 게다가 지방과 단백질은 주로 장에서 흡수가 되기 때문에 대장에 오래 머물게 된다. 덕분에 변이 딱딱해져 변을 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변비는 배변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치질의 직접적인 악화요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지나치게 단단한 변이 항문에 상처를 주어 치열이 생기기도 하고, 잔변감에 힘을 주다보면 치핵이 항문 밖으로 빠지기도 쉽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야채나 과일 위주의 식단으로 건강과 치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 금주 : 술을 마시면 간은 알코올을 해독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너무 열심히 움직인 나머지 때로는 붓기도 한다. 내장의 혈액은 간을 통해 심장으로 가야하는데, 간이 부으면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인체를 돌고 돌아야 할 혈액이 원활이 움직이지 못하면 혈관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혈관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때 치핵총의 모세혈관 역시 영향을 받아 치핵이 악화된다.

젊다고 방심은 금물, 스트레스와 잘못된 식생활 때문

최근 젊은이들의 치핵 수술이 늘고 있다. 30, 40대의 전유물로 알고 있던 통념을 뒤집은 것이다. 실제로 필자의 병원에서 2000년 4월부터 지난해 연말까지의 입원환자 통계를 낸 결과, 입원환자 1649명을 중 20대 694명(42%) 30대 560명(34%)이었다. 20, 30대가 전체의 76%나 차지한 것.

일반적으로 치질은 사춘기 즈음에 생겨나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악화되는 질병이다. 그래서 보통 30대 후반이나 40대 정도에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학업, 취업 등의 스트레스와 패스트푸드 위주의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증상이 악화되는 시기도 빨라진 것이다.

한창 학업과 업무에 몰두할 때인 청년기에는 하루종일 앉아서 생활하기 십상이다. 흔히 치질이라 부르는 것의 정확한 명칭은 치핵이다. 배변시 쿠션 역할을 하는 항문 안쪽 정맥(치핵총)이 어떤 이유로 늘어나 항문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이다. 온종일 앉아있게 되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치핵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나친 뱃살 역시 복부정맥을 압박해 치핵총이 늘어나는 원인이 된다. 한편 스트레스 역시 장운동을 나쁘게 해 치질이 악화되는 것을 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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