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람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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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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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건. 그러나 다음 두 문장을 잊지 않으면 말도 탈도 없다. 땀이 번다. 꿈에 쓴다.

『사람사전』은 ‘돈’을 이렇게 풀었다. 서론을 덜어내면 딱 여덟 글자다. 땀이 번다. 꿈에 쓴다. 돈의 과거는 땀이어야 하고, 돈의 미래는 꿈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돈에 과거 미래가 어디 있어? 많이 벌면 그만이지. 내 땀은 흘리지 않고 남이 흘린 땀 가로채려고 침 질질 흘리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이 벌던데. 이렇게 반론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반론이 아니라는 걸 안다. 우리 현실에 대한 깊은 한숨이라는 걸 안다. 세상은 이 한숨을 위로하지 못한다. 내가 해야겠지. 정의 내린 사람이 책임져야겠지. 한숨에 섞여 나온 땀과 침 이야기로 위로를 시도해본다.

사람사전 9/23

사람사전 9/23

땀도 돈을 벌고 침도 돈을 법니다. 그러나 돈의 수명은 다릅니다. 땀은 썩지 않습니다. 소금기가 있어 썩지 않습니다. 따라서 땀이 번 돈도 썩지 않습니다. 하지만 침이 번 돈은 오래 못 갑니다. 돈과 함께 돈을 쥔 사람마저 썩고 맙니다. 침에는 소금기가 없으니까요.

이런 궤변이 위로가 될 리 없겠지만 나는 이 궤변을 믿는다. 침이 번 돈은 새로운 불안덩어리가 될 테니까. 몸의 불편은 잠시 덜 수 있겠지만 마음의 불편은 오히려 커질 테니까.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던진 질문과 내 대답을 그대로 옮기며 글을 맺는다. 땀 이야기이고 꿈 이야기다.

너는 왜 글을 쓰니? 돈 벌려고. 돈 벌어서 뭐하게? 돈 벌지 않아도 되는 글 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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