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스트레스로 돼지 죽어"

중앙일보

입력

“자식처럼 돌봐 온 돼지들이 시름시름 앓다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피눈물이 납니다.”

전북 장수군 계남면 호덕리 ‘장수양돈단지’ 입구에서 만난 신원호(51)씨는 돈사에 누워있는 돼지들을 가리키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가 동료 주민들과 함께 천막농성에 들어간 지도 1개월이 가까웠다.

주변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나오는 소음·진동으로 돼지들이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죽어 나가고 있다.

장수양돈단지는 청정 돼지를 사육,수출을 목표로 지난 1994년에 2만5천여평 규모로 조성돼 현재는 10 농가가 1만5천여두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사단이 벌어진 것은 지난 3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장수 IC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도로 예정지에 암벽이 많아 포크레인 6대를 동원해 바위를 깨부수고 들어내는 작업을 했다.또 덤프트럭 30여대가 밤낮없이 드나 들었다.

현재는 공사의 80%이상이 진척된 상태다.

그러나 공사장으로부터 30m밖에 떨어지지 않은 양돈단지 돼지들은 진동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먹고 잠자는 시간외에는 늘 귀를 땅에 대고 누워 있는 돼지들은 땅이 흔들리는 진동 ·차량 소음 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어미돼지들은 유산 ·조산이 잇따르고 불임과 무유(젖이 나오지 않음) 증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모두 2천여마리가 폐기됐다.종자용 어미돼지들이 많이 포함돼 금액으로 무려 7억5천여만원어치나 된다.

농민들이 “도로를 옮기든지 양돈단지를 이주시켜주든지 해달라”는 탄원서를 내자,국민고충처리위는 6일 “양돈사업 손실을 보상하겠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시공사인 한일건설은 “피해금액 산정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환경분쟁위원회에 제소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농민들은 “환경분쟁위로 가면 4∼9개월 이상이 걸린다”며 “이는 완공시점(11월)을 넘겨 보상문제를 지연시켜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라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발주자인 도로공사측은 “대학교수 등 관련전문가들을 빠른 시일 내 현장으로 초빙해 피해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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