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보아'가 크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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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민간 경제연구소에서는 가수 보아의 경제가치가 1조 원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래서인지 한국 청소년의 희망 직업 1위는 단연 연예인이다. 그러나 보아는 만들어진 스타다. 되고 싶다고 다 보아처럼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전국에 연예인을 지망하는 10대가 수 만명에 달한다.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를 준비하는 아이들만도 수 백명. 하나같이 제2의 보아를 꿈꾸지만, 제2의 보아가 된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제2의 보아를 꿈꾸는 아이들과 그 제작자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제작자가 자신이 키우는 10대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공개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인 12살(1991년 생) 소녀 김윤혜. 모 의류업체 모델활동과 각종 잡지 사진으로 꽤 얼굴이 알려진 아이다. 인터넷 팬 카페 회원 수가 2만명이 넘으며 안티 사이트도 여러 개다. 김윤혜의 진짜 모습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화장기 없는 맨 얼굴과 춤 및 노래 연습 장면 공개를 요구했다.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아이기스' 연예아카데미를 찾았다. 한국 최고의 안무가 중 한명인 애니가 김윤혜의 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어 박선주 등에게 노래를 배우는 장면을 지켜봤다. 춤과 노래 모두 '아직 먼 수준'으로 보였지만, 12살 먹은 소녀의 장래성을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더구나 김윤혜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연예 지도자들에게 레슨을 받는 중이다. 제작자 이대희 씨에게 물었다.

-제2의 보아를 만드는 게 꿈인가.

▲보아보다 더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나 혼자의 생각이면 환상일 수 있지만, PD 작가 미용사 등 약 50명이 같은 의견을 표시했다. 윤혜는 가수로 데뷔시킨 뒤 연기까지 영역을 넓혀나갈 생각이다. 활동무대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중화권 전체로 보고 있다.

-어떤 훈련을 시키고 있나.

▲지난해부터 노래, 춤, 일본어, 발레, 피아노 등을 가르치고 경락마사지, 몸매관리, 미용서비스 등을 주 1회씩 받게 하고 있다. 유승범 최강희 등이 가끔 연기를 봐준다.

-어린 아이에게 경락마사지와 몸매관리라니.

▲모르는 말이다. 어리니까 시키는 거다. 성장과정에서 얼굴형과 체형이 보기 싫게 변하지 않게 예방하는 차원이다.

-투자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일단 교육비만 월 1000만원이다. 윤혜는 경기도 수원이 집이고 가정 환경이 넉넉지 않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얼마 전 서울 서초동에 전세집을 얻어줘 어머니와 함께 올라오게 했다. 내가 생활비, 학비, 수학여행비까지 다 내준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3억원 이상이며, 데뷔예정인 내년 가을까지 2억원 정도가 더 들어갈 예상이다.

제작자 이 씨는 엄청난 비용에 대해 "다 빌린 돈이며 못뜨면 제대로 쪽박찬다"고 했다. 그렇다면 12살 소녀 김윤혜는 억대의 돈, 투자, 성공, 수익, 위험 등 비즈니스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까. 자신에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 김윤혜와의 대화.

-막대한 금액이 투자되고 있는 걸 아나.

▲당연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한다. 성공이 쉽지 않지만 난 자신있다. 보아언니를 보면 얼마나 노력했는지 느낄 수 있다. 나는 더 열심히 해서 더 크게 성공하겠다.

-또래들과는 다른 생활인데.

▲어릴 때부터 연예인이 꿈이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학교 수업은 100% 받고 밤시간에 연예인 준비를 한다.

자신있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한 해에 나오는 음반이 1000장 이상. 이 중 신인은 90% 이상 실패한다. 이렇게 큰 리스크를 감수하고 12살 소녀에게 수 억원을 투자하는 심리를 보통의 비즈니스 마인드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대희 씨의 말을 들어봤다.

-만약 실패했을 때 손실이 두렵지 않나.

▲20억원이 있다고 치자. 4억 들인 신인이 4번 망해도 나머지 4억으로 키운 한 팀이 100억원을 벌어줄 수도 있다는 게 이바닥 종사자들의 심리다.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 아닌가.

▲로또보다는 낫다고 본다. 그 돈으로 로또를 사면 무슨 수익이 있겠는가. 물론 연예계에서 대박을 내기는 힘들다. 그러나 과거에는 운칠기삼(운이 70%, 제작자 능력이 30%라는 뜻)이었지만 요즘은 능력이 50%이상 성공을 좌우한다. 변하고 있다.

언뜻 봐선 이해하기 힘든 사업. 그러나 한 명의 유망주에게 수 억원을 투자하는 엔터테인먼트 자본이 존재하는 건 분명한 현실이다. 그리고 수 만명의 10대가 제2의 보아를 꿈꾸고 있다. 바늘 구멍을 뚫기 위한 경쟁의 원리는 10대에게도 냉정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일간스포츠=맹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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