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석에서] 예술감독 무용론 들썩 '기획의 힘' 모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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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이 벌써 네 달째 공석 중이다. 1995년 예술의전당 조직개편과 함께 도입된 예술감독은 3년 임기의 상임제로 운영돼 오다가 2001년부터 2년 임기의 비상임제로 바뀌었다. 역대 상임 예술감독은 오페라 연출가 출신의 조성진.문호근씨가 맡았었고 윤호진 에이콤 대표(공연)와 지휘자 김홍식(음악)씨가 비상임 예술감독을 지냈다.

한동안 상임 예술감독제 재도입설이 나오다가 최근엔 아예 폐지할 것이라는 불길한 이야기도 들린다. 예술감독이 없어도 예술의전당이 잘 돌아간다고 판단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이 지방 공연장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하면 사태가 간단하지 않다. 지난 1일 개관한 대전문화예술의전당도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기술팀장 출신을 관장으로 영입하면서 아예 예술감독제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대전시 문화체육국에선 "예술감독은 단일 예술단체에서 지휘자.안무자.연출자 등이 복수 직명으로 쓰고 있다"며 "특정 장르 출신 예술감독의 '장르 이기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예술감독제보다는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활성화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예술감독 무용론'의 근거로 내세우는 런던 바비칸센터, 시드니오페라하우스의 예를 들면서 말이다.

예술의전당이'세계 10대 아트센터'의 진입을 앞두고 모델로 삼고 있는 바비칸센터나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도 예술감독이 엄연히 존재한다. 1995년 BBC 출신의 존 투사가 바비칸센터의 경영감독(CEO)에 취임하면서 맨 먼저 한 일은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페스티벌을 기획해오던 그레이엄 세필드를 예술감독에 스카우트해오는 일이었다.

투사-세필드 콤비는 10년째 마차의 두 수레바퀴처럼 바비칸센터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 6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공연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슈 헌트는 퀸즐랜드극단 총감독, 호주 현대극단 제작감독을 지냈다. 연극인 출신이 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축제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예술감독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피날레 공연인 음악극 '실크로드'는 지난 6월 15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초연됐던 작품의 재공연이고 소프라노 조수미 독창회, 바이올리니스트 유니스 리 독주회, 소프라노 신영옥 독창회, 연극 '프루프' 등은 서울공연의 지방 순회무대일 뿐이다. 예술감독제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는 한 서울 예술의전당은 외국 공연의 수입,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은 서울 공연의 지방 유치 일변도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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