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체육 살리자] 2. 즐거운 체육을 만들어 가는 일본

중앙일보

입력

'일본 소학교(초등학교)의 체육 수업엔 선생님이 없다' .

지난달 20일 오전 11시30분 일본 도쿄(東京)도 미나토(港)구에 위치한 미타(立御田) 소학교. 밖에는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지만 실내 체육관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일본의 모든 소학교는 실내체육관을 갖추고 있다. 비가 와 체육수업을 못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4학년 3반 학생 27명은 공 릴레이 게임을 통해 농구의 기본인 패스를 배우고 있었다. 게임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팀원끼리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는 횟수도 더 많아진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지켜보던 교사는 게임이 끝난 뒤에야 농구에서 패스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마사키 도루 교장은 "교사는 체육수업의 보조자일 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재미있는 체육시간을 만들어 간다" 고 말했다.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는 체육수업. 일본의 학교체육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즐거운 체육' 의 핵심이다.

◇ 왜 '즐거운 체육' 인가

일본은 1980년대까지 학생들이 체육교사의 획일적 지시에 따르는 수동적인 체육수업을 해왔다. 체육을 싫어하는 학생들이 급증했고 사회체육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자연히 학생별 개인차를 인정하고 자발성을 강조하는 체육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금은 '즐겁지 않으면 체육이 아니다' 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됐다.

즐거운 체육의 시발점은 소학교. 쓰쿠바(筑波)대 체육대 학장인 다카하시 다케오 교수는 "어릴 때 체육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는 것이 평생 스포츠의 기반이 된다" 고 말했다.

일본의 학교체육은 ▶소학교 저학년은 노는 감각을 몸에 익히는 시기▶중학교까지는 적성에 맞는 스포츠를 발견하는 시기▶고등학교는 선택한 스포츠를 심도있게 학습하는 전문화 시기로 커리큘럼이 구조화돼 있다.

◇ 자유로운 룰 변경과 혼성팀 편성

일본 소학교의 인기 체육종목인 라인사커와 포토볼은 각각 축구와 농구를 소학교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다. 체육교사들로 구성된 체육연구회는 기성종목 룰의 변경, 아이들에 맞는 체육 기자재 개발 등을 연구하고 이는 문부성의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배구의 경우 체육연구회가 개발, 문부성과 일본 배구협회가 승인한 소학교용 소프트공을 사용하고 있다.

또 스포츠는 남녀가 공유하는 문화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남녀 혼성팀의 편성이 적극 권장되고 있다.

◇ 휘슬없는 체육시간

지난달 22일 오전 9시 사이타마(埼玉)현 지온지(慈恩寺)중학교 2학년 1반의 체육시간. 다소 딱딱한 기계체조 수업이지만 교사의 휘슬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클래식 음악의 선율. 학생들은 클래식.팝 등 단계적으로 변하는 음악의 템포에 맞춰 다른 종목으로 옮겨가며 자율적인 훈련을 한다.

◇ 지역사회와의 연계

도쿄도 미타카(三鷹)시의 시립 제1소학교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 그중에서도 단연 축구다.

일본 프로축구(J리그)의 지역 연고팀인 F C 도쿄 선수들이 학생에게 직접 축구를 지도해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우상인 선수들은 교사와 함께 축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6학년을 대상으로 1년에 10시간씩 축구의 기본기 및 스포츠맨십에 대한 강의를 한다.

최근에는 FC 도쿄에 이어 요코하마 매리너스도 지역 소학교에서 축구수업을 지도하는 등 프로구단의 학교체육 지원은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하시모토 시게키 체육주임 교사는 프로축구 구단은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고 학교도 효과적인 체육수업을 할 수 있다" 며 "지역사회가 학교체육에 기여하는 부분이 더욱 커질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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