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이나 텔레비전을 거치지 않고 관객과 직접 대면한다는 점, 몇초간 끊어가는 초단타 촬영 기법과 달리 1시간이 넘는 긴 호흡, 몇달간의 강도 높은 연습 등 연극은 배우에게 많은 걸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연극으로 다져진 배우에게는 무뎌져가는 연기력을 가다듬을 기회가 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화려한 시절' 등 스크린과 TV에서 종횡무진하던 류승범이 대학로에 나타났다. 그는 공중 화장실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린 연극 '비언소'(11월 4일~12월 28일.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 출연한다. 그는 1인 다역을 하는 6명의 배우들 중 한명으로 나와 연극의 감을 익힌다.
류씨는 대학로의 지인에게 평소 '연극을 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고, 이를 전해들은 제작진이 그를 캐스팅했다는 후문이다. 연출자인 박광정씨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시 영화나 방송에 돌아가더라도 긴 호흡의 연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나쁜 남자''청풍명월' 등 지난 몇년간 영화와 방송을 휩쓴 배우 조재현도 정통 연극에 모습을 드러낸다. 내년 1월에 오르는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를 통해서다. 여섯마리 말의 눈을 찌르는 등 사회와 불화하는 젊은이 알런 역으로, 조씨는 1991년에도 이 배역을 맡았었다.
요즘 '목포는 항구다''맹부삼천지교' 두개의 영화를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배역에 욕심을 냈다고 한다. 조씨는 "91년엔 뭔가 잘 모르고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연극은 매우 힘들고 두려운 작업이지만 그것이 내 존재를 찾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질투는 나의 힘'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박해일은 대학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서온 그는 내년 가을 연극 '청춘예찬'에 출연할 예정이다.
한편 영화배우 유지태도 내년 하반기 연극 진출을 조심스레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몇년 새 설경구.송강호.최민식 등 대학로 출신 영화배우들이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은 영화나 방송 쪽 연기자들이 대학로 진출을 모색하는 데 기폭제가 됐다.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이들이 연극을 할 경우 개인적으로 연기력이 향상되고 연극계는 분위기가 떠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