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람사전

불편 / 불평 / 불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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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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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 견딜 수 있는 것. 불평: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 불행: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 견뎌야 하는 것.

『사람사전』은 ‘불편, 불평, 불행’ 세 단어를 이렇게 풀었다. 불편이 불행으로 번지는 과정을 이렇게 추적했다.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크는 불편하다. 춤과 노래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불금도 불편하다. 예배당 밖에서 기도해야 하는 주말도 불편하다. 선생님이 모니터 속으로 들어간 풍경도 불편하고, 학생들이 주먹으로 악수하는 모습도 불편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이런 낯선 불편을 강요했다. 우리는 견뎠다.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잘 견뎠다. 불편이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사람사전 6/10

사람사전 6/10

하루라도 더 빨리 불편에서 빠져나오고 싶어서였을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던 방심을 흔들어 깨웠다. 긴 잠에서 깨어난 방심은 우리 몸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소심, 조심, 조바심, 경계심 같은 신중한 마음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새 우리 몸 절반은 무장해제. 바이러스는 씩 웃으며 다시 공격 개시를 외치려 한다.

아직 위기다. 여전히 위기다. 위기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극복으로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딤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긴 불편을 조금 더 견뎌야 한다.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했을 때 우리가 견뎌야 하는 불행은 너무 크다.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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