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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도 유죄로본 지하철 성추행…4번째 재판 시작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출근시간 혼잡한 지하철 내부.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출근시간 혼잡한 지하철 내부.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연합뉴스]

출근길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여성의 신체를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A(36)씨가 1심과 2심, 대법원에서 모두 유죄취지 판결을 받고도 4번째 재판을 또 받게 됐다. 1심 법원은 개정된 법률을 빠뜨리고 선고했고 2심은 이런 1심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다 또 다른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만원 지하철서 손 뒤로 뻗어 추행

지난 2018년 여름 한 월요일 아침. 서울 지하철 1호선 객차 안은 만원이었다. 빽빽하게 사람들이 서 있던 때 여성 B씨는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가 자신의 음부에 계속 닿는 느낌이 든 것이다. B씨는 당시 크로스백을 앞으로 메고 있었는데 가방 밑으로 A씨 손이 보였고 놀란 B씨는 A씨 팔을 밀어냈다. B씨는 “A씨 손이 갈고리 모양으로 내 음부 쪽을 향해 있었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진술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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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A씨 측은 당시 상황에 대해 “평소대로 엄지손가락을 바지 옆 주머니에 살짝 끼워 넣은 채로 손을 내려놓고 서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 변호인은 “만약 엄지손가락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팔을 내린 채 있었다면 누군가 팔을 미는 경우 손이 갈고리 모양으로 보일 수 있지 않나”라고 항변했다.

두 사람만 아는 진실…1·2심 '유죄'

CCTV도, 목격자도 없었기 때문에 법원은 두 사람의 진술을 면밀히 살필 수밖에 없었다. 1심은 B씨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B씨는 법정에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연하기도 했고, 진술도 일관됐다. 또 B씨가 특별히 허위 진술을 할 사정도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과 아동ㆍ청소년 관련 기관 3년간 취업 제한 등을 명했다.

2심도 A씨 말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A씨 말대로 엄지손가락을 끼운 채 서 있었고 누가 팔을 밀어 손이 갈고리 모양으로 보였다면 A씨는 “B씨가 팔을 밀었다”는 진술을 상황 설명 때 했어야 했다. 하지만 A씨는 그런 설명은 전혀 없이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 B씨가 소리를 질러 돌아보게 됐다”고 진술했을 뿐이다. 2심은 전반적인 상황을 볼 때 B씨말이 더 믿을 만하다고 봤다. 2심은 1심 판결에 더해 A씨에게 장애인 복지 시설에도 3년간 취업을 제한한다고 명했다. 개정법에 따라 1심부터 장애인 기관 취업제한을 명해야 했지만 1심이 이를 빠뜨렸으므로 2심이 바로잡는다는 취지였다.

1심 실수 바로잡은 2심도 실수

하지만 결과적으로 2심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1심이 끝나고 A씨는 항소했지만, 검사는 항소하지 않았다. 피고인만 항소한 경우 2심에서는 1심에서 A씨에게 내린 형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의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이다.

대법원은 먼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결한 2심 판단에는 잘못된 점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2심에서 장애인 기관 취업 제한을 추가로 명한 것은 잘못됐다고 봤다. 2심에서 추가된 장애인 기관 취업 제한은 A씨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홀로 항소한 A씨가 2심에서 자신에게 더 불이익한 결과를 받게 되는 셈이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심에서 장애인 기관 취업 제한을 선고하지 않은 이상 A씨는 장애인 기관에 대한 취업 제한은 받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A씨는 인천지법 합의부에서 4번째 재판인 파기환송심을 받게 됐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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