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사 첫 재산 실사나선 대법원 '법원 자정' 신호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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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재산 공개 대상자가 아닌 평판사의 재산 내용을 실사한 것은 재산 형성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어 법조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법조 브로커 윤상림.김홍수씨 사건 등도 이번 실사에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993명의 조사 대상 중 10명 중 한 명꼴로 재산 등록 시 일부 재산을 누락한 것으로 나타나 판사로서 지켜야 할 공직자 윤리의식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재산 내역 실사를 3년 주기로 전체 판사를 상대로 시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이번 실사에서 제외된 사법연수원 30기 이하 판사도 실사 대상이 된다.

판사들은 실사 자료를 정기 인사뿐 아니라 법관 임용 후 10년마다 실시하는 법관 재임용 심사에 활용한다는 대법원의 방침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 "자기검증 없는 관행 타파"=판사들은 공직자윤리법(3조)에 따라 매년 초 자신과 가족의 부동산과 금융자산 내역을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2004년까지 법원은 의무 공개 대상인 고법부장판사(차관급)를 제외하고는 등록 내역과 실제로 소유한 재산이 일치하는지를 조사하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8조)이 부동산에 대한 실사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고 다만 의심이 갈 경우 조사할 수 있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실사에서 누락 보고자 중 상당수는 매도 등으로 인해 자신의 소유가 아닌데도 계속 보유하고 있는 재산으로 신고했다고 한다. 또 필지 분할 등으로 부동산이 감소했지만 이를 반영하지 않거나, 상속을 받고도 이를 챙기지 못한 경우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한 명의 경우 본인 소유 아파트를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것으로 드러나 단순 착오인지 고의적 누락인지 조사가 필요한 상태다.

하지만 '솜방망이' 징계와 비위 사실 비공개는 실사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상자였던 지방법원 부장급 판사 373명 중 19명이 등록 누락으로 경위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두 명만 각각 서면경고와 주의촉구 조치를 내렸다. 나머지 여섯 명은 단순 경고조치에 그쳤다.

대한변협 하창우 공보이사는 "판사는 고도의 윤리가 요구되는 자리인데 재산신고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측면이 있다"며 "누락하거나 중대 과실로 인해 사실과 다르게 신고하면 명단 공개 등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 "실사 결과 공개해야"=재산 실사 사실을 뒤늦게 안 일선 판사들은 법원의 자정작업이 본격화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법원의 자정을 위한 전향적 조치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잘못 신고한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며 "이번을 계기로 더욱 판사의 윤리성을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비위가 발견됐음에도 서면경고만하고 넘어간다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며 "조사 결과는 물론 처리 결과까지 국민 앞에 떳떳하게 내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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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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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現] 변호사하창우법률사무소 변호사

1954년


문병주.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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