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의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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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클링턴 대통령이 자신의 성 추문에 대한 증언을 하면서 코를 자주 만졌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거짓말과 코 만지는 행동... 피노키오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우리는 일상 생활을 통해 수많은 거짓말을 만나고 있다.

부모로서 한두 번 정도 겪어보는 것. 아이들의 거짓말이다. 예를 들면 낮은 점수가 나온 성적표를 부모가 보지 못하도록 감추거나 아직 성적표가 안나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이 글을 읽는 어른들도 한번 정도는 그랬을 수도 있다.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던데...부모의 반응은 가지 각색이다. 거짓말 자체의 특성상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다. 아니 밝힐 수 없을 것이다. 정신건강분야 전문가에게 아이의 문제를 상담하는 경우에 아이의 거짓말이 첫 호소인 경우가 약 5%가 된다고 한다. 물론 외국의 자료지만... 대개는 거짓말이 반복되고 타이르고 꾸중을 해도 고쳐지지 않을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거짓말의 진실을 몇 가지 말해보고자 한다.

<font color="#554e00">▣ <b>아이의 발달과 거짓말 </b></font>

만 4, 5세가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은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우유병을 엎지른 만 2세 아이에게 누가 그랬냐고 물으면 "아빠가...", "토끼가..."라고 대답하는 경우, 이것을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학령 전기의 아동들은 흑백 논리를 가지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착한 사람은 나쁜 행동을 결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나쁜 행동을 없었던 일로 부정해야 된다.

만 7,8세가 되면 거짓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 시기에는 거짓말의 부정적인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즉, 가끔은 부모를 속일 수 있지만 결국은 부모가 자신을 못믿게 되고 자신에게 손해가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 이후의 거짓말이 진정한 의미의 거짓말이 된다.

<font color="#554e00">▣ <b>아이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b></font>

거짓말은 관계의 맥락에서 발생한다. 즉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li>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li>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li>부끄럽거나 당황스러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li>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싫어서
<li>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li>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li>또래의 환심이나 존경을 받기 위해서

<font color="#554e00">▣ <b>소아의 거짓말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 </b></font>

<li>거짓말은 부모갈등, 신체 학대, 성 학대와 같은 아이의 삶에 있어서 다른 중요한 문제와 관련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li>어린 나이의 거짓말은 나중에 성장 후 나타나는 훔치기, 무단결석, 약물남용, 공격적 행동이나 다른 반사회적 행동과 같은 문제행동의 신호일 수 있다.
<li>거짓말을 많이 하는 아이가 성장 후에 반사회적 인격장애, 경계선 인격장애와 같은 심각한 정신병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li>거짓말은 단독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반항성 장애, 품행장애와 같은 심각한 소아기 정신병리의 한 증상일 수도 있다.

<font color="#554e00">▣ <b>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가족 환경</b></font>

<li>부모의 따뜻함이나 진실성이 부족한 경우
<li>부모가 아이를 거부적으로 대하는 경우
<li>부모가 아이의 행동이나 생활을 감독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li>편부모이거나 행복하지 못한 부모
<li>화합되지 못한 가족 분위기
<li>부모의 아이에 대한 불신
<li>부모의 실직, 가계수입의 감소, 부모의 질병

<font color="#554e00">▣ <b>거짓말을 하는 아이의 문제들 </b></font>

주위에서 기대하는 만큼 학업 성적, 사회적인 성취를 하지 못하는 아이 자신의 능력에 문제가 있어도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li>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학습장애, 낮은 지능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을 거짓말을 통해 감추려 하게 된다.

<li>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신체적 장애, 만성 질병 등을 앓는 아이들도 또래로부터의 거절, 압력이나 잦은 좌절로 인해 현실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거짓말이라는 해결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li>청소년기는 부끄러움, 자존심의 손상 등에 매우 취약한 시기다. 사회적인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거나, 남과의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는 이 시기에 자신의 주체성을 찾기 위한 은밀한 실험적 행동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font color="#554e00">▣ <b>자녀의 거짓말을 염려하는 부모에게</b></font>

한두 번의 거짓말을 가지고 부모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소위 습관적인 거짓말이나, 학교, 집, 친구 등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는 거짓말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문제 행동 즉, 물건이나 돈 훔치기, 청소년의 약물 사용 등이 동반되는가 여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두 번의 거짓으로 고민하지 말라는 것은 거짓말을 무시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모른 척 덮어두는 것은 해롭다. 아이 스스로가 거짓이라는 잘못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font color="#554e00">▣ <b>거짓말을 다루는 몇 가지 방법 </b></font>

<li>흥분하지 말고 침착한 태도를 취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화부터 내는 것은 아이가 진실을 고백하고, 다음에 자신이 한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당신은 사건을 취조하는 형사나 심판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진정으로 염려하고 사랑하는 부모라는 것을 명심한다.

<li>나쁜 것은 아이가 아니고, 아이의 행동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li>아이로 하여금 왜 자신이 거짓말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li>평소에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칭찬해준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성장과정을 거친 아이가 커서 진실하고 도덕적인 어른이 된다.

<li>부모 자신의 평소 행동을 되돌아 본다. 아이에게 부모가 "누구누구에게 전화오면 외출하고 없다고 해라"는 말을 한다면 아이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고 화를 내는 부모를 바라보고 혼란에 빠진다. 부모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li>의심스럽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아이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li>아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 난 경우,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았을까를 물어본다. 그리고 아이가 느끼는 부끄러움, 죄악감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대인관계에서 진실이 얼마다 중요한가에 대한 부모의 견해를 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li>심하게 매를 때리거나 처벌하는 것은 해롭다. 심한 체벌에 대한 아이의 불만과 화는 부모-자식 관계를 더 멀게 만들고 심지어는 부모를 골탕먹이기 위한 복수라는 의미의 새로운 거짓말을 낳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모는 아이의 거짓말을 다룰 때, 그 행동의 심판자가 아니라 아이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최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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