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20번 바뀐 대입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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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교육을 위한 공통기초시험은 도대체 어떤 문제가 출제되고 특별활동과 행동발달상황·교내 외 봉사활동은 어떻게 점수화 한다는 겁니까.』
중3짜리 ,아들을 둔 회사원 박모씨 (45·서울 대치동) 는 올해 중3이 대학에 진학하는 93학년도부터 적용예정인 공통기초시험+내신성적+전공기초시험을 골자로 하는 새 대입제도 개선 안의 내용이 보도될 때마다 혼란에 빠지곤 한다.
직장생활 20여 년만에 4년 전 어렵게 「교육 특구」라 일컫는 8학군에 자리잡은 박씨는 지난5월에도 크게 놀랐다.
8학군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서울시 고교학군 조정방안」이 현행 중3에게 적용된다고 발표됐기 때문이다. 단일학군제·광역학군제·공동학군제에 대한 학부모의 여론이 엇비슷해 8학군제 실시가 1년간 유보됐지만 박씨는 입시제도 얘기만 나오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 뚜껑보고 놀라는 격이 되고 만다.
대전시 갈마동 정모씨 (65)는 대입제도하면 아예 넌더리를 낸다.
자신은 물론 자녀 2남3녀가 모두 다른 입시제도로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자녀1명 대학에 들어갈 때마다 전형주자료· 전형보조자료· 입학성적사정방법· 고사원칙·고사과목·고사형태· 입학자격· 특별전형·모집단위 및 정원책정 규모 등이 들쭉날쭉 했다.
정씨는 45년 국어·영어·수학·사회 등 필수과목과 선택1과목 시험을 치르는 대학별 단독시험 제 아래서 입학했다.
그런가하면 장남은 65년 대학입학 국가자격고사 제, 장녀는68년 대학별 단독시험 제, 차녀와 차남은 71년과 74년 대학입학예비고사와 본고사범행, 3녀는 81년 대입학력고사와 내신제의 병행제도를 통해 각각 대학생이 됐다.
『대입제도에 맞게 공부해야하기 때문에 자식들 적성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박씨는 졸속 대입정책이 입시경쟁교육을 야기, 과열과외현상 등 각종 사회적 부조리 현상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교직생활 44년 동안 대입제도가 20번 바뀌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봤습니다』
지난해 K고교에서 정년 퇴직한 김모씨 (66· 서울 화곡동) 는『이랬다, 저랬다하는 대입제도 때문에 입시철만 되면 입시제도를 파악하느라 학생들의 진로지도에 큰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대입제도는 45년 이후 크게 7번 바뀌었다. 내용을 보면 대학별 단독시험 제 (45∼53년) , 국가연합고사와 본고사 병행(54년) , 대학별 유 시험과 무시험 (내신 제) 병행 (55∼6l년), 대학입학 국가자격고사 제 (62∼63년) , 대학별 단독시험 제 (64∼68년) , 대학입학예비고사와 본고사병행 (69∼80년) , 대학입학학력고사와 내신제의 범행 (81∼88년) 등이다.
그러나 45년부터 88년까지 큰 골격 안에서 입학사정방법이나 내신 제 적용비율· 논술고사실시· 지원방법 등의 변경을 포함하면 사실상 2O번 엎치락뒤치락하며 변천을 거듭해온 것이다.
80년 7·30조치이후 5공 시절에는 무려 10번이나 바뀌는 기록까지 남겼다.
86년에는 느닷없이 논술고사 제를 도입해 법석을 떨게 했다가 2년만에 폐지하는 등 문교부의 졸속행정으로 교사·학생·학부모들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한심스런 꼴이 되고있다.
대입제도는 이처럼 정착하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따라 바뀌는 악순환만 되풀이해온 가운데 93학년도부터 새로운 제도를 놓고 또다시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제도개선위원회 (연구책임자 박도정 고대교수)는 대입제도의 문제에 대해 『대학교육이 대중 교육적 성격으로 전환되었는데도 학생선발의 기준은 여전히 점수가 가장 중요시되고 있으며 다양한 기준을 적용하는데 대한불신이 아직도 팽배해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학의 학생선발 권이 극히 제한돼 있어 대학의 특색에 맞는 학생선발제도가 뿌리내리지 못해 혼란만 가중시켜온다는 것이다.
『고교3년 동안 점수 따기에만 열중해 원하는 대학에는 진학했으나 학과 수업을 따라 가는데 어려움을 겪고있습니다』
S대국문과 2년 이모군(20)은 『점수위주의 고교교육에다 외기식 시험준비 교육으로 인해 고교시절에 문학작품 하나 읽지 못해 뒤늦게 찾아 읽느라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논술식 대학시험에서 논리전개에 애를 먹고있다』며 잘못된 고교교육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81년도부터 대학 본고사가 폐지되고 예비고사 성적과 내신성적으로 학생을 뽑으면서「요행」이 명문대 입학 권을 따는 대입눈치작전이 4여 년간 전염병처럼 번져 교육망국 병까지 불렀었다.
뿐만 아니라 12년 학교교육이 대입 하루로 판가름나는 오늘의 입시 병을 낳아 64∼68년 사이 대학별 선발제보다 오히려 20년이나 뒷걸음질을 하고 말았다. 『대입제도는 어떤 것을 택하든 모두가 만족할만한 절대완벽은 없습니다. 문제는 부작용이 있어 고칠 때는 점진적 개혁을 꾀해야하나 급격히 바뀐다는 점입니다』
서울 고 곽한철 교장은 『이는 장관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작품」하나 남기겠다고 하는 것이 이유인 것 같아요. 제도가 바뀌면 내년이나 내후년부터 시행된다고 하니 말이나 되느냐』 고 반문한다. <도성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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