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왜 이리 모질까|「설 군 사건」은 우리의 슬픈 현실을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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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연·고려대생들의 서울 동양공전 설인종군 폭행치사사건을 보면서「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다시 선다.
국어사전은「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사람 또는 인류, 둘째 사람이 사는 곳 또는 세상, 셋째 규범적·가치적으로 신 또는 동물과 대립되는 존재로서의 사람, 넷째 사람의 됨됨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도 해석되지 않는, 적어도 인간의 범주에 소속시킬 수 없는 인간(?)들이 인간 속에서 기생하고 있는 현실에 통곡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인간(?)이 있음을 보아야하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호모 사피엔스도, 사람과 사람사이도, 사람이 사는 곳도, 규범적·가치적으로 신 또는 동물과 대립되는 존재도, 사람의 됨됨이도 아니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그 인간(?)들이 노동자의 아들을 죽이는 인간(?). 각목으로 린치를 가할 때 한 참인간의 고통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참 평등·참 자유에 대해서 눈물겹도록 기원한 한 참 인간이 아닌 인간에 의해 하늘에서 받은 참 평등한 단 한 목숨을 앗겼으니 말이다.
배움에 목말라 공고 야간부에 진학했으나 공사판 노동자의 아버지, 파출부로 자식을 위해 한 평생을 희생하겠다는 어머니를 잘못 만난 원망을 접어두고 세상 잘못 만난 후회도 마다한 채 책장을 침 발라넘기며 공부한 그 한 참 인간 설 군. 그래서 전문대학 진학의 길을 텄지만 4년제 대학 안 나오면 행세 못하는 세상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그 한 참 인간.
인간의 개념 중에는 잘생긴 사람만 인간이고, 머리 좋은 사람만 인간이고, 재주 많은 사람만 인간이고, 가진 자만 인간이라는 항목은 없다. 다만 기질의 차이와 개성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보면 때로는 순간적인 도착증에 걸릴 수 있는 실수를 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 진정한 평등과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세상에서는 그런 실수가 용납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설 군과 같은 슬픈 현실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다운 인간, 참 인간이 아닌 인간이 섞여 살기 때문일까. 모두 다 변증법적 모순이다.
인간자체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역설만이 통하는 세상에 사는 인간이 되어서는 존재의 이유가 불쌍함을 알아야한다. 조석래(한양대 국어국문학강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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