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공화국」의 선포|신선한 충격…「인민」이 빠진 국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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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산권 국가 중에서 한국과 처음으로 국교를 맺고, 서방접경선의 철조망을 철거하고, 「사회주의 노동자당」(공산당) 에서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는 등 동구의 탈 이념· 공존움직임에 앞장 서온 헝가리인민공화국이 23일 드디어 「헝가리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40년 동안 굳어져 온 한 나라의 정체를 바꾸는 작업을 이처럼 피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룬데 대해 우선 헝가리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와 같은 선례는 변혁을 지향하고 있는 다른 공산국가들에도 타산지석의 효과를 나타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헝가리의 공화정 선포는 소련세력의 강압에 의해 뒤집어 씌워진 스탈린주의의 죄악과 오류를 청산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를 벗어나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와 혼합경제체제로의 변신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변신은 헝가리 국내 문제를 훨씬 뛰어넘어 시대적· 지역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첫째, 헝가리의 변신은 2차대전이래 세계를 「공포의 균형」 아래서 떨게 했던 철의 장막을 폭력이나 무력 없이 허물어뜨리는 첫 걸음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아직 소련과 개혁에 저항하고 있는 다른 동구국가들의 반응이 분명치는 않지만 현재의 형세로 보아 56년 부다페스트의 비극이 재현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각 공산국은 자기 나라 사정에 맞는 경제체제를 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고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선언은 스탈린과 브레즈네프시대에 엄격히 적용되어온 제한주권론의 굴레로부터 소련위성국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따라서 다른 공산국가들도 헝가리가 앞서간 자주노선의 길을 뒤따라 나설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둘째, 이와 같은 변화는 두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유럽대륙에서 무력충돌의 위협을 크게 줄여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라와 국민을 움직이는 철권으로 작용해온 이념이 퇴색하고 경제실용주의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때 드골이 꿈꿨던 알프스에서 우랄산맥까지에 이르는 유럽대륙의 평화공존과 통합의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이와 같은 원대하고 희망찬 전망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한 맺힌 우리의 남북관계에도 이 변화가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탈린주의가 그 본 고장에서부터 배척 당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역사적 실패로 단죄되고있는 현상을 북한만이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구의 변화가 북한에 스며드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어떤 형태로, 어떤 시기에 그 변화가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장기적 대북 정책은 그런 변화를 점진적으로 유도하는 방향으로 입안되고 추구돼야 할 것이다. 헝가리의 경우는 아직 단정하기는 일러도 일단 폭력을 수반 하지 않고 변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1백만명이상의 병력과 김일성 유일 사상으로 무장된 북한에서 동구와 같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 때 권력이 어떤 형태로 이에 대응할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진적 교류의 폭을 넓혀감으로써 변화가 가져올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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