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에서 다 까먹었다… 상반기 경상수지 9년 만에 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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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경상수지가 외환위기 이후 9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았다는 뜻이다. 상품 수출로 벌어들인 돈만으론 해외 여행과 유학 경비,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배당금 등으로 해외에 내줄 돈을 메울 수 없었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상반기 경상수지는 2억676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반기 기준으로는 1997년 상반기(101억4000만 달러 적자) 이후 첫 적자다.

수출이 부진한 탓이 아니다. 올 상반기 상품 수지는 127억9510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물건을 만들어 팔아 외화를 벌어오는 전통적인 산업 동력은 그런 대로 선전한 셈이다.

문제는 서비스 분야다. 서비스 수지에서만 88억7520만 달러의 적자가 났다. 여기에다 소득 수지(21억2970만 달러 적자)와 경상이전 수지(20억5780만 달러 적자)에서 모두 큰 구멍이 나는 바람에 전체 경상수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달 초만 해도 한은은 상반기 경상수지는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관측했다. 서비스 수지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적자는 면할 것이라고 봤다. 물론 6월 한 달의 성적만 보면 11억 달러의 흑자를 냈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던 셈이다. 하지만 상반기 초반의 적자가 워낙 커 이를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은은 그래도 여전히 낙관적이다. 당초 전망한 올해 40억 달러 흑자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바꾸지 않고 있다.

반면 민간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런 추세라면 한은이 장담한 올해 경상수지 흑자 목표는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하반기 수출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게 문제다. 환율과 고유가가 계속 우리 기업에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7~8월 여름철 해외여행 성수기가 기다리고 있다. 매년 이맘때 국민이 해외에서 뿌리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근거로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폭을 23억 달러로 낮췄다. LG경제연구원도 22억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경상수지가 적자가 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선임연구원은 "서비스 수지가 예상 밖으로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올해 전체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적자 전환은 우리 경제의 성장력과 경쟁력 약화를 방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9년 만에 반기 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도 심상치 않지만 수출에만 기대는 '외줄타기식' 경제 구조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경제연구원 하준경 박사는 "개방을 통해 서비스 분야의 체질을 강화하지 않는 이상 경상 적자를 반전시키기는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엔 경기의 방향이 관건이 될 듯하다. 지금은 대체로 둔화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투자나 소비가 움츠러들 공산이 크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대로 늘어나는 추세라면 경기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반면 소비와 투자의 둔화는 오히려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씀씀이가 줄어들면 적자도 줄어드는 이치다. 따라서 지금 경상수지와 경기의 관계를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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