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길목에 종교 문학 바람|가톨릭·불교계 신앙세계 다룬 작품 출간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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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0년대 마지막 가을문단에 조용하게 종교문합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 성체대회에 즈음하여 가톨릭 문우회 1백여 문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세계에 바탕, 최근『오시는 임에게』『예수별곡』『작은사랑이 아름다워라』등 시·소설·수필 선집 3권을 퍼냈다. 또 동국대 역경원이 불교적 사유체계를 반영한 근·현대시 1백편을 골라 해설을 덧붙인『시와 불교와의 만남』5권을 얼마 전 펴낸데 이어 문학아카데미가 불교를 주제로 한 현역작가 9명의 작품을 한 권에 모은『극락산』을 출간했다.
또 승려출신 작가 백금남씨가 구도적 삶을 불교의 십우도 사상에 맞물린 장편「십우도」를 펴내는 등 종교문학이 잇따라 나오면서 90년대로 넘어가는 문학의 깊이를 모색하고 있다.
80년대 우리 문학은 분단·민주화·노동·궁핍·부조리 등 사회적인 문제를 주로 다뤘다. 분출되는 사회적 욕구에 따라 에서 문학이 거기에 부응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감시 및 폭로·비판기능으로서의 사실주의 조류는 격동의 80년대 뿐 아니라 문학의 한 축을 이루며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삶에 얽매이지 않고 삶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가며 일상성을 초월하는 것 또한 문학의 덕목이다.
이 같은 초월성은 현실을 약화·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으로 오히려 현실을 건강히 지탱시켜준다. 이때 문학은 종교와 만나게 된다.
불교문학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신라의 향가로부터 우리문학의 큰 흐름을 이루며 내려왔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한용운이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저항시로 민족문학의 한 봉우리를 이루었으며 서정주씨 등으로 이어지며 초월적 서정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80년대 소설에서는 김성동씨의『만다라』이후 한승원씨의『아제아제 바라아제』,
백금남씨의『십우도』로 이어지고 있으며 김상렬·김문수·황충상씨 등이 꾸준히 불교적 세계관에 바탕, 소설작업을 하고있다.
한편 기독교문학은 기독교의 중심적 가치체계인 사랑·정의·자유·평등 등으로 한국의 근대적 이념 형성에 기여하며 근대문학으로 흘러들었다. 멀리는 사회 비판과 함께 사도국이라는 유토피아 건설로 허균의『홍길동전』에 이미 기독교적 요소가 보인다는 설도 있으나 대체로 개신교가 이 땅에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한 1884년 이후 찬송가번역 작업등을 통해 개화기 가사에 영향을 끼치며 근대문학으로 흘러든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 문학사에서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시달리던 정지용이 가톨릭 세계관으로 침잠했던 것을 비롯, 김남조·구상씨 등이 시에서 묵시론적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또 삼라만상은 살아 있고 각기 정령을 지니고 있다는 샤머니즘이야말로 문학적 상상력의 모태다.
이러한. 활물론적 상상력은 한국문학의 가장 큰 성파를 거두어오며 근·현대 문학에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 민족공동체 핏속에 스며든 샤머니즘적 미학은「신바람 나는 한 풀이」로서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80년대 민중문학으로 흘러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종교문학의 본령은 문학을 매개로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에 일렁이는 삶을 통해 신앙의 자세로 삶의 본질을 모색하는데 있다. 때문에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화해를 이룰수. 없는 갈등의 종교적 도피가 아니라 자신을 투여한 끝간데 없는 존재론적 탐구만이 삶의 초월적 본질을 보여줄 수 있다』며 교리전달에 복속된 문학이나 값싼 기복종교 문학을 경계했다.<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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