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난민 자유 찾았지만 「체제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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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 난민들은 자유를 찾아 고향을 등지고 꿈에 그리던 서독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도착과 동시에 낯선 서방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동독난민들은 대부분 헝가리 등 동구국가로 관광 여행차 가벼운 짐만 챙겨 들고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가진 것이라곤 두세 개의 여행가방과 소액의 현금 뿐이다.
이들 동독난민들이 지난 2개월 동안 자본주의 사회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중 가장 큰 것은 주택문제다.
이들 난민들은 비교적 쉽게 직장은 구해도 살집을 마련하지 못해 수용소 신세를 면치 못하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주택 문제외에도 서독 기업들이 난민들의 기술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공식자격증을 확인할 수 없고 자격증이 확인되더라도 서독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해 이들 난민들의 고용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동독난민들은 대부분 젊은층으로 이들중에는 치과의사·종교인·사무직 요원 등 전문직업인도 있으나 대부분이 공장노동자들. 이들 중 절반은 가정주부거나 어린이들이어서 고용의 기회가 많지 않다.
동독에서 이번에 이주한 기술자인 마티스씨는 『서독에서 직장을 구하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으나 『아내와 14세 된 아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방 두개짜리 작은 아파트를 빌리는데 한달에 1천2백 마르크(43만원)를 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동독난민들은 서독 도착 즉시 「환영비」로 1인당 2백 마르크(약 7만원)씩 서독정부로부터 지급 받은 뒤 가족 규모나 동독시절의 급료에 따라 한달에 최고 2천 마르크까지 실업보장지원금을 받는다.
난민들은 또 동독에 두고온 가재도구에 대한 보상금으로 최고 5천 마르크까지 지급받고 새 가구 등 필수품 구입비로 6천 마르크까지 융자를 받을 수 있다.
이번에 이주한 롤프씨(27)는 이같은 서독정부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중고차 1대와 가구·주방기구·세탁기·냉장고·난로구입비에만 이미 1만 마르크가 들었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서독 정부에서 7천 마르크를 빌려야했다』고 말했다. 롤프씨는 제약회사인 바이엘사에 취직, 3천5백 마르크의 월급을 받고 있으나 주택비와 생계비를 빼고 나면 융자금 상환이 벅차다고 밝혔다.
서독은 현재 동독난민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있으나 이미 2백만명의 실업자를 안고 있는 서독정부는 지금까지 3만명에 달하는 난민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특히 난민들이 주택문제나 재정문제 외에도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이웃들과의 조화문제와 어린이들이 고향생각에 눈물짓는 경우가 많아 벌써부터 향수병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독정부는 난민수용소에 사회사업전문가를 파견, 난민들을 대상으로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시안월스트리트 저널=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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