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총대 맨 수출입은행…행장 바뀌자 본격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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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수출입은행이 이사 선임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추천을 받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 선임이 이뤄지면 금융권에서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는 첫 사례다.

금융계 첫 추진 … 논란 재점화 #수은 “협의했지만 합의 아니다”

수출입은행 이사는 은행장이 추천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한다. 이사 6명 중 2명(비상임)의 임기가 이달 만료되는데 선임 과정에서 노조의 추천을 받겠다는 것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협의한 건 사실이지만 반드시 넣겠다고 합의한 건 아니다”라며 “다음 주 중 복수 후보를 추천할 텐데 노조 추천 인사가 포함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방문규. [연합뉴스]

방문규. [연합뉴스]

지난 10월 수출입은행장에 취임한 방문규(사진) 행장은 문재인 정부 실세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직속 경제혁신추진위원장을 지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이사회에 직접 참여하는 걸 말한다.

금융권에서 구체적인 요구가 처음 나온 건 2017년 11월이다. KB노조는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추천한 이사를 선임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부결됐다. IBK기업은행 노조도 추천서를 전달하는 형태로 이사 선임을 요구한 적이 있지만 무산됐다.

수출입은행이 노조 추천을 받겠다고 결정하면 노동이사제 도입이 금융권 전체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최종 권고안에 ‘금융사에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검토를 권고한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노조의 추천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해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노동계가 ‘공약을 지키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민간기업으로 확산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 도입의 이유나 효과, 예상되는 부작용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고, 노동이사의 책임과 권한도 매우 모호한 상태”라며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혜를 베풀 듯 이사를 추천하라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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