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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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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그동안 정부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몰라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사회에 갚고 싶어요.”

지난달 22일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김모(80) 할머니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전 재산 2400만원이 든 흰 봉투를 품에 안은 채였다.

홀로 사는 김 할머니는 월 50만원 남짓의 생계급여에서 반지하 셋방 월세, 생활비를 뺀 금액을 10여년 넘게 모은 돈이었다. 간간히 폐지를 주워 판 돈도 더했다. 김 할머니는 이 돈을 “좋은 곳에 써달라”며 건넸다. 평소 할머니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주민센터 직원이 말렸지만 뜻을 꺾지 못했다. 할머니는 기부자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매년 연말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워지는 ‘사랑의 온도탑’은 김 할머니와 같은 따뜻한 마음이 쌓여 100℃가 된다.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최근 문제의 집을 팔았다. 그는 “차액은 전액 기부하겠다”고 알렸다. 1년 반 전 25억7000만원에 산 집은 그새 8억8000만원이 뛰었다. 양도세 등을 빼면 절반 정도가 남는다. 10억원 넘게 대출을 얻어 과감하게 투자한 만큼 시세차익은 컸다.

그는 “시세차익을 노렸다는 공격을 받을 거라 기부한다”고 설명했다. 차익을 노리지 않고 월 500만원(금리 2.5%로 10억원 20년 대출 시) 넘는 이자를 감당하면서 재개발 지역의 오래된 집을 산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 치자.

하지만 기부를 면죄부로 여기는 듯한 그의 태도는 씁쓸함을 안긴다. 총선 출마설에 자신의 ‘쓰임새’를 얘기하니 더욱 그렇다. 부디 그의 기부가 정치적 목표를 위한 얕은꾀가 아니기를 믿고 싶다. 착한 기부의 의미까지 퇴색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