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앞 실수'는 본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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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주요 8개국)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나눈 사적인 대화가 당시 켜져 있던 마이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생중계'되면서 역대 미 대통령의 비슷한 일화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23일 뉴욕 타임스는 역대 대통령들의 '마이크 앞 실수 역사'를 전하면서 이를 각본과 의전 속에 감춰진 대통령의 본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사료'로 소개했다.

가장 유명한 실수담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 연설 소동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연설 직전 마이크가 켜져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막 소련을 영원히 불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우리는 5분 내에 폭격을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레이건 대통령이 당시 소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일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정보기관.국방부 인사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발언이 고스란히 녹음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그는 해외정보기관원들이 독재자와 맞서기에 너무 유화적이고 용기가 없다며 "고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표현했다. 국방부 사람들은 용기는 있지만 "두뇌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점잖고 분별 있게 보여온 케네디의 평소 이미지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대선후보 경선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한 재시 잭슨 목사를 향해 "더러운 배신이며 중상모략적인 행위"라고 거칠게 비난하는 말과 모습이 TV 카메라에 담겼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초래한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녹음기록이다. 이 기록을 토대로 '닉슨의 그늘'을 펴낸 작가 데이비드 그린버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백악관은 사적인 대화를 녹음하거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극히 꺼려, 대중은 물론 역사학자도 간혹 나오는 대통령의 실수담에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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