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에 울음바다-사할린 동포 「망향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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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 순간을 50년이나 기다려왔습니다.』 한국판 쿤타킨테의 후예들은 김포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모두가 통곡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1회 세계한민족 체육대회와 때를 같이해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은 사할린 동포 40여명의 사연은 우리 근대사를 집약한 듯 비극으로 점철된 기구한 것이었다.
47년만에 고국을 찾은 이기철씨(79)는 43년 소매를 붙잡고 울부짖는 현순(당시 5세), 현남 (당시1세) 두 자식과 피눈물의 생이별을 했었다.
이씨는 사할린 탄광에서 광부로 혹사당하다 해방을 맞이했으나 귀국하지 못하자 건축노동을 하면서도 처자식과의 재결합의 그날을 기다리며 18년 동안 독신으로 지내오다 6l년에야 현재의 부인 박금순씨(75)와 결혼했다.
이씨의 부인 박씨는 징용간 남편을 찾아 사할린으로 간 뒤 1남4녀를 두고 살아오다 남편과 사별한 뒤 이씨와 결혼한 것이다.
이번에도 박씨는 남편 이씨와 함께 귀국치 못해 수많은 사할린교포들과 마찬가지로 한시바삐 2차 모국방문이 실현되길 기다리고 있다.
또 이두봉(68)·이석봉(65) 씨는 형제가 함께 징용을 당했다.
그후 40여년 이씨 형제는 그래도 『혹시나』하는 실낱같은 희망 속에 고국방문을 꿈꾸며 소련국적이나 북조선(북한)국적 취득의 유혹을 뿌리치고 냉대를 받으면서도 무국적신분을 감수해왔다.
이씨 형제와 같이 이번 방문자들 중에는 13명이 고국을 찾을 희망에 무국적신분으로 남아있었다.
사할린동포들의 한결같은 소망은『죽기 전에 조국을 방문, 혈육을 찾아보고 돌아가신 부모의 묘에 성묘를 하는 것』이라고 방문단은 전했다. <김기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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