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여 주인공 캐서린은|헤밍웨이의 짝사랑 여인|내달 출판될『헤밍웨이의 사랑과 전쟁』서 밝혀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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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 뒤엔 종종 여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연정은『신곡』을 낳았고 샤를로테에 대한 괴테의 불타는 사랑은『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승화됐다.
주옥같은 슈만의 멜로디도 클라라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도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연상의 연인」이 있었고, 사실은 그녀에게 퇴짜를 맞았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다음달 출판 예정인『헤밍웨이의 사랑과 전쟁』이란 책 속에 나온다.
헤밍웨이가『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주인공 캐서린 바클리로 묘사할 정도로 한 평생 그의 우상이었던 문제의 여성은 아그네스폰 쿠로프스키.
독일계 미국인으로 헤밍웨이보다 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았던 폰 쿠로프스키는 국제적십자사에 근무했던 간호원출신이었다·
이들의 만남은 헤밍웨이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 전선에 초컬릿과 담배를 보급하다 오스트리아군 박격포 탄에 맞아 부상하면서 이뤄진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부상한 최초의 미국인이었던 헤밍웨이는 밀라노의 병원으로 후송됐고 이곳에서 부상병을 간호하던 폰 쿠로프스키를 만났다. 헤밍웨이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헤밍웨이를 자신에게 귀찮게 구는 많은 부상병 가운데 하나쯤으로만 생각했다.
『헤밍웨이의 사랑과 전쟁』에서 소개됐지만 그녀가 헤밍웨이에게 보낸 편지 52통과 일기에서 폰 쿠로프스키는 헤밍웨이를「아이」「소년」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무관심도 헤밍웨이의 끈질긴 구애작전으로 동요를 일으켰고 그해 8월25일자 일기에서는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이제 헤밍웨이는 나를 야릇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귀여운 소년이다.』
또 발신날짜가 없는 한 편지에서 그녀는『뜨거운 것을 갖고 싶다』고 말해 정신적으로는 물론 육체적으로도 헤밍웨이를 원하고 있음을 주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헤밍웨이가 1919년 그녀가 자기와 결혼하기 위해 곧 뒤따라 귀국할 것이란 희망 속에 미국으로귀국하면서 식어간다.
헤밍웨이가 귀국한 뒤에도『사랑한다』고 계속 편지를 보내던 그녀는 드디어 2개월 후 절교의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로써 두 사람의 사랑, 정확히 말해 헤밍웨이 쪽의 짝사랑에 가까웠던 이들의 사랑은 끝나게 된다.
폰 쿠로프스키가 편지에서 언급은 안 했지만 그녀는 이미 카라치올로 라는 이탈리아공작과 가까워져 있었고 결혼까지 약속했었다. 그러나 카라치올로의 부모가 반대, 결국 결혼에 실패한 그녀는 미국으로 귀국해 가너 라는 미국인과 결혼했다. 이마저도 다시 이혼으로 끝나 1934년 호텔을 경영하던 스탠필드 라는 남자와 결혼한 폰 쿠로프스키는 1961년 헤밍웨이가 자살할 때까지 그와는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녀는 1984년 사망했다.<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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