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의 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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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작고한 수필가 김소운씨의 유명한 『목근통신』 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가 일본에 있을 때 한 미국인 친지가 『미스터김, 그대가 만일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태어났던들 몇 배 몇 십배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련마는….』 『천만의 말씀….』님 김소운씨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 어머니는 레프라(나병환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그 미국인은『오오 그러리라』하며 김소운씨의 손을 꼭 잡았다.
어제 저녁 TV화면에 비친 김포공항은 몇 년 전 온 국민을 울린 「이산가족 찾기」를 방불케 하는 짙은 감동으로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제1회 세계한민족체육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귀국한 사할린의 1세 동포들. 백발이 성성한 그들은 꿈에도 잊지 못하던 가족과 친지들을 부둥켜안고 어린아이들처럼 엉엉 울며 몸부림쳤다.
겨우 4시간 거리의 조국에 돌아오는데 50년의 세월이 걸린 사할린 동포들. 그들은 눈물과 통곡으로 이처럼 망향의 한을 달랬다.
그들은 하바로프스크 공항에 도착한 태극마크의 KAL기를 보고 벌써 울먹였고, 기내식으로 나온 쌀밥과 김치를 대하고는 이미 고향의 맛과 냄새에 가슴이 메어졌다. 오죽하면 『고향에 가서 이팝 (쌀밥) 을 실컷 먹겠다』고 했겠는가.
어제 날짜 중앙일보에 모스크바 현지인터뷰로 소개된 소련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인 막심김 박사 (25일 귀국) 는 오늘날 소련에 사는 한인들의 존재를 이렇게 정의했다. 『심장으로는 한인이고, 정신적으로는 러시아인이며, 근본적으로는 소련사람』 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할린동포를 두고 한말은 아닐 것이다.
같은 소련인들조차 마로소(너무 춥다) 라며 혀를 내두르는 변경의 땅. 그 사할린에 거주하는 6만여 명의 동포들 가운데 특히 제1세대는 저마다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한을 간직하고 있다. 일본군국주의에 희생되어 강제로 조국과 가족의 품을 떠나야 했던 그 처절한 망향의 설움 때문에 그들은 정신적으로도 아직 한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들의 영구 귀환은 꼭 실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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