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 애장품 경매 400여명 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대통령이 기르는 진돗개는 뭔가 다를 것 같았는데…."(국가유공자전우회 차태균씨)

"수천억원을 주무르던 사람이 겨우 30만원짜리 골프채를 썼다니…. 코미디예요."(서울 마포구 망원동 55세 李모씨)

2일 오후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압류 재산에 대한 경매가 열린 서울 연희동 궁말 어린이 놀이터. '이름 값 때문에' 귀한 물건들에 눈독을 들인 고서화 수집상에서부터 전직 대통령의 살림살이를 구경하러 온 주부까지 4백여명이 몰렸다.

말 그대로 북새통. 경매를 주관한 서울지법 서부지원 측은 당초 全씨 집 별채에서 경매를 열려 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리자 부랴부랴 장소를 동네 공원으로 옮겼다. 때문에 경매 시작도 두시간이나 늦춰졌다.

하지만 막상 경매는 싱겁게 끝났다. 두둑하게 현찰을 준비해온 고미술상 김홍선(47)씨가 경매품 가운데 서예 작품(3점).병풍(3점).동양화(6점)와 그랜드 피아노 등 소위 알짜배기들을 1억1천8백50만원에 싹쓸이한 것.

金씨의 대리인은 "金씨가 여태까지 외국 대통령이 사용해 오던 물건들을 많이 수집해 왔다"며 "이번에 낙찰받은 물건까지 포함해 박물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매는 全씨가 미납한 1천8백91억원의 추징금 환수를 위해 압류된 49점의 동산(動産)을 7개 군(群)으로 나눠 '패키지'응찰 식으로 진행됐다. 첫 순서는 TV 등 가재도구와 피아노.진돗개 한쌍(송이.설이). 시작과 동시에 네 명이 참여해 수천만원대로 올라갔지만 10분 만에 7천8백만원을 제시한 金씨에게 돌아갔다.

全씨의 30만원 상당 랭스필드 골프채는 경매상을 한다는 趙모(40)씨에게 9백만원에 돌아갔고, 도자기가 포함된 3번 군은 평가액(55만원)의 45배인 2천5백만원을 제시한 韓모(41)씨에게 돌아갔다. 趙씨는 "골프채는 치려고 산 게 아니라 소장용으로 산 것"이라고 말했다.

커프스 버튼과 찻잔 등 액세서리와 가재도구(평가액 1백52만원)를 1천5백만원에 사들인 金모(59)씨는 경남 진주에서 상경한 사람. 그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산 물건을 모두 全씨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全씨 집은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굳게 닫혀 있었다. 全씨 사저 관리인은 "全전 대통령은 종일 집안에 머무르면서 별 말이 없었고 섭섭해 하는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8년 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진돗개의 경우 직접 먹이를 주고 산책 때 데리고 나가는 등 무척 아껴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이 관리인은 전했다.

그런 마음을 읽었을까. 미술품 등과 함께 진돗개를 경락받은 김홍선씨의 대리인은 "다른 물건은 수집품으로 보관하겠지만 진돗개는 원래 주인인 全씨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물건이 한 묶음씩 나뉘어 경매에 부쳐지는 바람에 한두개 정도를 사러온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했다.

윤창희.고란 기자<thepla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사진설명전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애장품 경매가 실시된 2일 오후, 서울 연희동 전씨의 자택 부근 골목에 시민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인파 때문에 경매 장소는 동네 놀이터로 옮겨졌다.[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