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세일즈맨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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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광고가 '훌륭한' 광고일까? 다양한 견해가 가능하겠지만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 보겠다.

첫째, '광고주가 좋다고 한 광고가 훌륭한 광고'라는 시니컬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입장이 있다. 둘째, 매출 증진에도 기여하고 광고 그 자체도 명작으로 후대에 남을 만해야 한다는 순진한 이상주의적 견해가 있다. 셋째, 매출은 어떻든 광고 그 자체가 화제가 되어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패러디되어야 한다는 포스트모던 일파의 쿨한 주장도 강력하게 존재한다. 넷째, 광고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며 광고는 오직 제품을 위해서만 존재하다 사라져야 한다는 자기희생적 태도다. 사실 이런 광고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

네 번째 견해의 시조는 '광고란 인쇄된 세일즈맨십'이란 말을 남긴 캐나다 출신 미국 광고인 존 E 케네디라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훌륭한 광고란 훌륭한 세일즈맨이다. 그런데 세일즈맨의 복장이나 말투, 태도 등이 너무 독특해 사람들이 그가 설명하는 제품에는 관심이 없고 세일즈맨에게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런 세일즈맨은 실격이다. 말을 너무 청산유수로 잘하는 세일즈맨도 결코 유능한 것이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자명종 시계 하나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시계 바늘이 짤깍! 하며 6시를 가리킨다. 듣기 싫은 자명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를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자명종은 아무 설명 없이 계속 울린다.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려 할 때 자막이 등장한다. "잘 들어 보세요." 자명종은 계속 울린다. 자막이 다시 등장한다. "이 듣기 싫은 소리를 잘 기억해 두세요." 계속 울리는 자명종 소리 속에서 사람들은 불쾌해진다. 마지막 자막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로또에 당첨되면 다시는 이 소리를 안 듣게 될 테니까요."

스페인의 로또 광고 얘기다. 광고하려는 상품인 로또에 집중하기 위해 그 외 것은 절제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된 카메라 앵글엔 오직 자명종 시계 하나만이 등장한다. 모델도, 성우도, 음악도, 컴퓨터 그래픽도 없다. 제작비도 최소한이다. 그렇다고 이 광고가 유명 모델과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떡칠한 고가 광고보다 효과가 없다 할 수 있을까.

이를 정치지도자의 경우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상대적으로 다수의 국민이 선택했다면 '훌륭한' 대통령일까? 아니면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해야만 진정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걸까? 누가 뭐라든간에 자신의 통치 스타일에만 공을 들이는 대통령은 어떨까? 그도 아니라면 무대 전면에 나서기보다 국민을 위해 불필요한 것은 절제할 줄 아는 조용한 지도자가 옳은 것일까?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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