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산 재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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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침마다 눈을 뜨며 나는 요즈음 신비한 경험을 한다. 아파트 거실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산천이 유난히도 아름답게 내 눈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남쪽을 바라보면 강남지역의 산등성이들이 짙푸른 녹색을 자랑하며 서있다.
북쪽을 바라보아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멀리 삼각산 연봉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한강변에 깔아놓은 잔디와 조화를 이루며 알뜰하게. 정리되어있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햇빛 탓일까, 아니면 지난달 중국여행에서 본 값싼 수종의 황량한 대륙산천이 연상되어 우리의 강산이 돋보이는 때문일까.
지난 60년 독일 유학길에 오르며 처음으로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 본 우리의 헐벗은 강산은 풍요하게 윤기 나는 일본의 자연과 대조를 이루며 나의 가슴에 아픔을 깊이 새겨 넣었다.
그런데 이번 중국여행길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의 산천이 빛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절대로 좋은 당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우리 강산이 비옥하게 마저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북경, 상해, 그리고 백두산 기슭의 연변을 여행하며 만난 한족 속에 섞여 사는조선 족의 생활 속에서 나는 우리의 참 모습을 보았다.
오랫동안 말로만 들어온 쌍둥이형제를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부지런하고 깨끗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정갈한 모습. 결코 게으르고 비겁한「엽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또 88올림픽은 국내외에 사는 한국인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민족적 자학증세를 말끔히 치유해주고 오히려 새로운 긍지를 심어준 좋은 약이었다는 것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오늘의 우리 민족상을 이룩한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다함께 땀흘려 일하며 지혜를 모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현재 분출하고 있는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고 참모습에 겸손함을 더할 수 있다면, 그래서 서로가 조금씩만 더 참고 견딜 수만 있다면, 얼마 안 있어 우리는 강산만 아름답게 윤기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가 세계 속에서 한층 더 빛나리라는 망상 아닌 확신을 해본다. 양혜숙<이대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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