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아직 희망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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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호 31면

강홍준 사회 에디터

강홍준 사회 에디터

살처분한 돼지가 14만 마리를 넘어섰다. 지난달 17일 경기도 파주군 연다산동 양돈농장에서 처음 발견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W)이 경기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다. 비무장지대(DMZ)에서 감염된 뒤 폐사한 멧돼지도 발견됐다. 중앙SUNDAY는 지난 4월 ‘아프리카돼지열병, 한국은 무풍지대?’라는 제목의 스페셜리포트 기사를 통해 이 감염병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정부에 강력한 차단 방역을 주문했다. 하지만 벌써 ‘13번째 확진’이다. 앞으로 그 숫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정부의 방역 실패나 무능의 책임을 가리고, 비난을 퍼붓기에 앞서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확진 13호 아프리카돼지열병 #북한변수 무시해선 못잡는다

현재 ASF는 더는 확산을 막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인가. 지난달 23일부터 일주일 동안 경기도 파주와 양주 등에 마련된 방역대책본부와 방역초소 등을 찾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확진 판정이 난 농장들 사이의 관계를 따져봤다. 현재까지 ASF는 경기 북부와 강화를 잇는 ‘접경 라인’ 밑으로 남하하지 않았다. 이들 확진 농장들 사이에선 차량 이동 등의 흔적이나 연결성은 있다. 이는 확진 초기 단계에 일시이동중지 명령을 성급하게 해제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17일 처음 확진 판정이 나온 뒤 48시간 이내에 추가 발생 의심 신고가 들어오지 않자 가축의 일시이동중지 명령을 해제했다. 이 부분이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다. 결국은 파주와 김포, 강화의 돼지가 모두 살처분되는 비극을 낳게 했다.

아직 다행스러운 것은 접경 라인 이남 경기 남부 등에서 확진 판정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찌 됐던 확진 농장 반경 3㎞ 이내 농장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당초 농림식품부가 마련한 긴급행동지침(SOP)에선 발생 농장으로부터 반경 500m까지가 살처분 대상이었지만 이를 3㎞까지 확장한 것은 정부가 잘한 조치다. AFS 발생 의심 신고 농장에서 시료를 가져다가 경북 김천에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있는 실험실로 가져가야 하는데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군과 소방당국이 협력해 헬기를 동원한 것도 나름 기민하게 대응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전파 경로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린다. 사실 AFS의 전파 경로는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너무 다양해 파악하기 쉽지 않다. 감염된 돼지에서 돼지로, 감염 음식물에서 돼지로, 바이러스를 지닌 진드기에서 돼지로, 감염된 산돼지에서 산돼지로, 그리고 또 돼지로 등이다. 여기에 까마귀 같은 새와 모기, 파리까지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북한 발생과 유입 변수를 의도적으로 무시해선 ASF를 뿌리뽑을 수 없다. 현재까지 확진 농장 대부분은 물가에 인접해 있다. 북한과 물길로 연결돼 있는 게 공통점이다. 지난 3일 경기도 연천의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감염 멧돼지 문제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미 북한 전역에서 ASF는 창궐했으며, 비무장지대까지 밀려왔다고 봐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북한에서 창궐한 바이러스는 우리의 경계를 뚫고 들어올 수 있다. 육지론 비무장지대든, 물길이든 이 경로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 차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만일 방역 당국이 ASF를 지금과 같이 접경 라인 안에 가둬둘 수 있다면 이는 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방역 성공 사례가 될 것이다. 국경을 넘어들어온 바이러스를 특정 지역 안에 가둬두는 일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이 시각에도 ASF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양돈 업계 종사자들과 방역 당국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강홍준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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