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경찰관의"유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유산은 가난과 고쳐주지 못한 가족들의 병마뿐이다. 직장생활에 충실하다보니 가정에 소홀했던 점을 용서 바란다.
9일 새벽 서울 마포경찰서 신흥파출소 임종은 경장(50)은 가족과 경찰에 유서2통을 남기고 28년의 경찰생활을 자살로 마감했다.
임 경장은 유서에서 박봉, 희망이 없는 장래, 인간대접 못 받는 경찰관생활에 대한 회의,아내의 병치레 등을 자살원인으로 밝혔다.
61년 군 제대 후 경찰에 투신, 줄곧 파출소 근무만 해온 임 경장의 지난달 봉급은 수당포함 47만3천원.
황해도출신 실향민인 임 경장은 근무우수 등 공적으로 내무장관 표창 등 15차례의 크고 작은 표창을 받아온 모범 경찰관이었으나 유족에게 남긴 것은 서울 이촌동 20평짜리 공무원아파트 1채와 대학교육을 시키지 못한 두 아들, 완쾌되지 못한 병상의 아내뿐이었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는 자책과 번민, 화해 및 용서로 일관 돼 있었지만 파출소 측에 남긴 유서는 마치 재야운동권 인사의 양심선언서와 같다.『박봉으로 병든 아내와 두 아들을 뒷바라지하다보니 남은 것은 짜증뿐이었습니다.『한정된 파출소근무 인원에 날로 늘어나는 치안수요, 무보수 시간외 근무에도 소임만은 다하려다보니 남은 것은 건강악화 뿐이었습니다.
『정부당국이 경찰관들을 사람으로 대접,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여건조성을 부탁드립니다.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는 경찰관 가장은 가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목숨으로 대신한다고 밝혔다.
요령과 술수 없이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으며 피해의식·죄의식 속에서 한으로 점철 된 경찰관생활을 공직자생활에서는 범죄로 인정되는 자살로 마감한 임 경장.
28년간을 한 직장에서 성실히 봉사한 동료를 추석 밑에 저 세상으로 보낸 동료경찰관들은 이 사건을 단순 자살사건으로 애써 덤덤히 받아들일 뿐이었다.<김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