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체질 못 벗은 민정의총-김진국<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0일 오후 가락동 민정당정치 연수원에서 민정당 의원들은 새삼 5공식을 벗어난 새로운 민주절차를 연습하고 있었다.
이한동 총무에 대한 동의안이 의원총회에 상정된 것이다.
당헌 47조 3항에는「원내총무는 의원총회의 동의를 얻어 총재가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다.
5공 시절엔 의총 동의절차도 없었는데 당헌규정 그 자체도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지난 해 김윤환 총무를 임명할 때는 박수로 통과시켜 당내 민주화의 노력이 겉치레 같은 인상을 남겼었다. 이번에도 대통령이「총무서리」가 아닌「총무」임명장을 미리 줘 당헌규정이 무시되긴 마찬가지였다.
이날 박준규 대표가 투표절차를 거쳐 진짜 민주화된 모습을 보이겠다고 밝히자 이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첫 발언에 나선 이치호 의원은『경선이 아닌 한 반대가 나와도 문제고 1백% 찬성이 나와도 문제니 선례에 따라 박수로 통과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명보·김현욱 의원은『찬반이 문제가 아니고 절차가 중요하다』고 반론을 폈다.
최운지·황병우·김종기 의원 등 대구·경북파들은『이 의원 제안에 이미 박수를 쳐 찬성을 표시했는데 뒤집는 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신경식 의원도『과거엔 총재가 임명했는데 동의문제를 검토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민주화가 됐고 투표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박수통과를 고집했다.
결국 각 상위별로 의견을 취합했는데 최운지 의원은 재무위원들의 의견이라며『민주주의를 한꺼번에 하려는 건 좋지 않다』며『중간쯤으로 기립투표하자』고 수정 동의했고 결국 총무임명 동의안은 공개투표 덕분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당헌규정이 아니더라도 투표를 하자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투표를 하는 건 너무나 망연하다.
그런데도 반대표 몇 표가 겁이 났는지 굳이 어설픈 만장일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5공체질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민정당식 발상을 보면서 서글픔을 금할 수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