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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 발목 잡힌 '철강 신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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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포스코 본사 건물을 점거하고 있는 건설노조원이 옥상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뉴시스]

건설노조의 파업으로 공사가 중단된 파이넥스 공장 건설 현장. 포항=조문규 기자

◆ 파이넥스 공법이란=기존의 고로(高爐) 방식은 철광석을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시설과 유연탄을 고온에서 가공하는 코크스 설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파이넥스는 철광과 유연탄을 그대로 써서 쇳물을 뽑아낸다. 공정이 생략되니 투자비가 저렴하고, 각종 오염 물질 배출도 줄일 수 있다. 또 가격이 싸고 생산량이 많아 수입하기 쉬운 지름 8㎜ 이하의 가루 철광석을 원료로 사용하는 이점이 있다. 2004년 국가 10대 신기술로 지정됐었다.

건설 노조원들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는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건물에서 북동쪽으로 5㎞ 떨어진 공사 현장. 19일 오전 경찰이 노조원 등 외부인의 진입에 대비해 포항제철소 정문에 설치한 컨테이너형 바리케이드를 지나 차로 10분쯤 달리자 대형 크레인과 두 개의 탑이 솟아 있는 거대한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조원들이 일손을 놓고 떠나온 '파이넥스 2공장' 건설 현장에는 주인 잃은 장갑만이 곳곳에 놓여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파이넥스 2공장은 포스코가 연말 완공을 목표로 2004년 7월부터 1조30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최첨단 시설. 파이넥스 공법을 채택한 공장을 짓는 것은 전 세계에서 포스코가 유일하다. 정상 가동될 경우 '세계 철강 역사를 새로 썼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철강 업계의 평이다.

이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도 "본사 건물을 점거당한 것보다 파이넥스 공장 건설이 중단된 일이 더 가슴 아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포스코는 이제껏 외부인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던 2공장 건설 현장을 이날 본지 기자에게 처음 공개했다.

◆ 공정 80%에서 공사 중단=송도해수욕장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있는 부지는 본 공장과 원료 저장시설, 산소발전공장 등을 합해 27만㎡(약 8만1700평) 규모다. 축구장 넓이의 30배에 달하며 공정은 80% 진행됐다. 파업 전에는 하루 평균 2500명의 근로자가 북적거리며 일하던 곳이었지만 이날은 포스코 직원 100여 명만이 현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진행되는 공사는 포스코의 자회사인 포스렉 소속 근로자 10여 명이 쇳물이 흘러나오는 통로 주변에 내화재를 까는 일이었다. 포스코는 현재 2공장 옆에 연간 60만t 생산 규모의 파이넥스 시험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시험공장은 연구용으로 개발된데다 규모가 작아 세계 유력 철강회사들이 가동하는 연간 300만t 생산 규모의 고로와 경쟁하기 어렵다. 현장에서 만난 주상훈 (팀장) 포스코 파이넥스 엔지니어링 리더는 "150만t 규모의 파이넥스 공장이 정상 가동돼야 300만t 고로보다 싼값에 쇳물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2공장이 완공돼 정상 가동돼야 상용화됐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과 일본 업체도 하지 못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 공장 완공이 막바지에 왔는데 파업으로 건설이 중단된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아쉬워했다. 포스코는 2공장 건설이 계속 늦어질 경우 2008년 인도에 파이넥스 공법을 채택한 제철소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파업으로 하루 32억원 매출 손실=파이넥스 2공장은 지난달 중순부터 정상적인 건설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노조가 하루 작업량을 평소의 20% 수준으로 줄이는 등 태업을 했기 때문이다. 파업을 시작한 지난달 30일부터는 건설이 중단됐다. 당장 파업을 풀어도 정상적인 건설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10~12일이 걸린다. 이를 고려하면 45일 정도의 차질이 빚어지고 파업이 길어지면 그만큼 완공이 늦어진다. 포스코 서상일 설비투자팀장은 "계획대로 내년 초부터 2공장을 정상 가동하면 하루에 32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파업 때문에 시기가 늦춰지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파이넥스 공법으로 하루 4만t씩 철강을 생산해 시가로 판매하는 것을 가정한 매출 손실이다.

포항=김원배 기자<onebye@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 포항건설노조는=포스코는 파이넥스 2공장 건설 등 제철소 관련 공사를 계열사인 포스코건설에 발주했고, 포스코건설은 기계.전기공사를 담당하는 60여 개 전문건설업체에 하청을 줬다. 이들 전문건설업체가 고용한 근로자들이 모여 노조를 결성한 것이 포항건설노조다. 이들은 건설업체의 모임인 전문건설협의회와 노사 협상이 결렬되자 지난달 30일 파업을 시작했고, 지난 13일 발주자인 포스코 본사를 점거해 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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