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님 감옥 넣고 맞게 해주세요" 성폭력 당한 11살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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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아동이 판사에게 쓴 편지. [연합뉴스]

성폭력 피해아동이 판사에게 쓴 편지. [연합뉴스]

“나한테 성추행했던 거는 7년형, 우리 가족 괴롭힌 거는 1년형…. 다 합쳐서 감옥에 가게 해달라.” 자신에게 성추행을 행사한 가해자 처벌이 늦어지자 피해자인 부산의 한 초등학교 4학년 A양이 재판 담당 판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편지에는 “저 안 믿고 오로지 나쁜 애로만 욕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처벌해주세요”라는 내용도 있다.

1학년 때 성추행 피해신고한 초등 4학년 #판사에게 편지보내 “꼭 처벌해달라”촉구 #재판부 두번 바뀌는 등 수사·재판 늦어져

A양과 상담을 한 부산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감옥에 가 있을 줄 알았던 가해자가 아직 재판받고 있다고 하자 지난달 말 피해 아동이 빨리 꼭 처벌해달라며 편지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노트에 연필로 쓴 3장 분량의 편지는 담당 변호사를 거쳐 해당 판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부산성폭력상담소 등에 따르면 A양은 초등 1학년을 마칠 때쯤인 2017년 1월 태권도학원 사범 B씨에게서 통학 차 안에서 유사 성행위를 강요받았다며 어머니 C씨에게 피해 사실을 처음 알렸다. C씨는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고, A양은 경찰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피해를 진술했다. A양 진술에는 경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내용과 여러 차례 다른 피해가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상담소 측은 밝혔다.

경찰이 A양 진술과 B씨를 상대로 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거짓’판정이 나오고 A양이 B씨 주요부위 특징을 그림으로 묘사한 점 등을 들어 두 차례 구속영장(13세 미만 미성년자 위계 등 간음 혐의)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경찰은 그해 4월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엄마 C씨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해자가 도망 우려 없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점, 무죄 추정 원칙 등을 들어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거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에 나선 검찰이 2017년 7월 대검찰청 소속 아동 전문 심리위원에게 진술 분석을 의뢰한 결과 A양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경찰 송치 1년 만인 지난해 4월 B씨를 기소했다. 이 사건은 경찰수사가 진행되던 2017년 3월 엄마 C씨가 한 포털사이트에 피해 사실을 올렸다가 사흘쯤 뒤 지웠지만, B씨가 결백을 주장하며 반박 글을 올리면서 동네에 소문이 나는 등 외부에 알려졌다.

하지만 2018년 5월부터 지난 8월까지 총 11차례 진행된 재판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그 새 재판부는 두 번이나 바뀌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4일쯤 열릴 예정이다. B씨 측은 C씨의 이혼 등 가정환경을 문제 삼아 A양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B씨 지인들은 B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동네에 소문이 나는 등 2차 피해를 본 C씨는 정상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해 하반기 살던 곳에서 이사한 데 이어 올해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켰다. C씨는 “재판 중 애 친구 엄마가 ‘애를 팔아서 돈을 뜯으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해줬다”며 “가해자 처벌이 이렇게 늦어질 줄 몰랐다. 애가 커가면서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아 빨리 재판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아동 성폭력의 경우 수사와 재판이 늦어지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피고 방어권을 주는 것도 맞지만, 법원 내부지침이나 내규를 만들어 하루빨리 재판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부산지법 관계자는 15일 “휴일이어서 기록 확인이 어렵다. 일과시간이 돼야 기록을 보고 재판 진행 상황을 얘기해줄 수 있다”고 해명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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