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의 교장 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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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침내 사제간의 인연을 거부하는 교장 폭행사건이 고등학교 구내에서 일어났다. 학부형이나 교사나 사회 전체가 전교조 결성 움직임이 있을 때부터 우려했고 두려워했던 최악의 사태가 고교생들의 교장 폭행사건으로 우리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이미 2학기 개학과 더불어 고교 현장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전교조의 출근투쟁 결과 한 학급 두 담임이라는 기현상이 빚어졌고 이어 수업거부 운동, 교장실 점거 농성으로 번지더니 급기야는 교장 폭행 사건으로 확대되어 버렸다. 이성보다는 감성, 현실적 논리보다는 정의와 이상을 높은 덕목으로 생각할 우리의 고교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이번의 한 학교에서 일어난 스승 폭행 사건은 매우 우발적이고 1회로 끝날 충동적 사태였다고 우리는 믿고 싶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고교 청소년들의 감성적 이상론이 앞으로의 중등교육 현장을 어떤 소요, 어떤 불가 측의 돌발 사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목원대의 스승 삭발 사건이 안겨 주었던 충격이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한 지금, 학생이 스승에게 가한 사형은 우리 사회의 전통적 윤리관으로 볼 때 어떤 명분,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다시금 천명한다.
더욱이 교장은 교사의 연륜과 경륜이 쌓여 이루어지는 상징적 직위다. 교장은 모든 교사의 대표일 뿐더러 모든 학생의 사표가 된다. 출근 투쟁을 벌이는 전임교사도 스승이지만 투쟁 교사를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교장도 똑같이 학생들의 스승인 것이다. 한 쪽 스승을 편들어 다른 쪽 스승에게 집단적으로 사형을 가하는 행위는 정의일 수도, 이상일 수도 없다.
전교조 사태가 교사 집단 내부의 갈등인 한 그 문제가 교사들간의 조정으로 끝날 때까지 학생들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당장은 교육 개혁을 둘러싼 문교 당국과 전교조교사간의 대결로 나타나고 있지만 여론의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도출돼 나가는 조정 기간을 학생들은 침묵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이 길이 교사를 돕는 길일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육현장을 올바르게 고쳐 나가는 개혁노선을 돕는 길이다.
결국 징계와 강행으로 맞선 대결구조의 전교조사태가 그들의 중-고 교실을 이렇듯 폭력화 황폐화로 몰고 온데 대해 정부와 교조교사들은·똑같이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의 학습 권을 침해하지 않고 학생들을 담보로 한 교조투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전교조는 이제 다시 본래의 방침을 행동으로 재확인해야 한다.
2학기 중-고 교실의 동요와 폭력화의 1차적 촉발요인은 출근투쟁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당장 철회토록 해야 한다. 또는 출근투쟁과 유사한 형태로 학생들의 감정을 촉발하고 충동하는 그 어떤 행위도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교장 폭행사건처럼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시킴으로써 일어나는 학교폭력·고교생 시위가 확산되면 될수록 교조교사들의 명분과 입지는 그만큼 떨어지고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교조 잔류 교사가 3백여 명으로 줄었다지만 전교조가 몰고 왔던 교육개혁의 의지만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다수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 교육개혁의 소망을 시위와 폭력으로 무산시키는 결과를 원치 않는다면 이제라도 교조 교사들은 학생들과 교실을 안전하게 보전하는 목으로 적극 기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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