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에 보내는 갈채…|김영희<본사 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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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봉건시대의 러시아에서는 수염에, 프랑스에서는 주택울타리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매긴 극성스러운 국왕이 있었고, 일본에서도 집, 집의 창문과 정면 벽, 그리고 하녀에게까지 과세하여 백성들을 괴롭히던 시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중세의 어떤 나라에서는 갓 결혼한 신랑신부에게 초야 세까지 물렸다니 세금을 거두려는 측의 극성이 이 정도였으면 내는 측의 탈세와 절 세를 위한 궁리 또한 보통이 아니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세금은 이와 같이 동서나 고금을 가릴 것 없이 걷는 자와 내는 자 간의 관계를 긴장시키고, 조세정책을 잘하고 못하고가 선정과 악정을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혹시 세금 많이 내는 것 그 자체를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사람으로서는 흔치않은「별종」이라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세금은 바로「나의 호주머니」를 노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토지공개념의도임과 실명제예금의 실시를 골자로 하여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 안에 보내는 요란한 갈채는 정치의 가사상태를 보고 국민들이 느끼는 짜증을 한결 덜어 주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지는 일면도 없지 않다. 세제를 혁명적으로 뜯어고치는 목적이 졸부들이 계속「탁재」를 늘리지 못하도록 물샐틈없는 법망을 쳐 가지고 요새 유행하는 말로분배의 정의가 넘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천하자는 데 있는 한 거기에 대한 지지가 아무리 열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혹시 한국이 전통적인 자본주의가 단단히 뿌리를 내린 나라였다면 국민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한적자생존의 논리 같은 것에 익숙하여 가진 자에 대한 증오나 질시가 무시해도 좋을 정도에 그칠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라 사촌이 논 샀다는 소식에 접하면 화장실부터 다녀오는 의식구조가 다소 남아 있는 그런 나라다. 가진 자들이 자숙해야 하는 사회·문화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요컨대 온당치 않게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온당한 선에서 부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번 세제개편 안에 대한 선장의 해석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러나 요란한 지지갈채에 묻혀 가느다랗게 들리는 경고의 소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1990년 1월 발효할 지가고시에 의한 땅값을 기준으로 볼 때 개인이 가진 땅에 종합토지세·방위세·택지소유 초과부담금이 부과될 경우최악의 경우 그 땅은 빠르면 7년 안에 세금으로 녹아 들어가 버릴 소지도 있다는 점은 사유재산권의 침해라는 비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이 개인재산권행사를 제한하는 법률제정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사유재산침해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분배의 정의에 반대하는 세력이라고 윽박질러 버리고 넘어간다면 새 세법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약화시킬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새 세법안과 그것을 지지하는 논조들이 깨끗한 부와 그렇지 않은 부를 가리지 않고 가진 자와 가진다는 것 자체를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반감을 낳은 것은 주중에도 골프장과 사우나에 몰려드는 졸부들, 근로자의 몇 달 월급에 맞먹는 드레스를 걸치고 여성전용살롱을 찾는 졸부들의 아내들 책임이지만 나라살림을 좌우하는 신성한 세금에 관한 법을 만드는 과정은 이성적이어야 하고 편견을 배제해야 할 것 아닌가.
토지공개념이 법으로 정착하여 실효를 거두면 분수에 맞지 않게 배가 부른 사람과 그들을 보고 배아파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토지공개념이나 그를 바탕으로 한 세법 그것이 집 없는 서민들에게 집 한 채씩을 제공하기라도 할 것처럼 여론을 오도하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토지초과이득세로 토지개발기금을 조성하여』 운운도 좋지만 이참에 몇 조원이 넘는다는 석유개발기금의 사용 처에 관한 납득할 만한 설명부터 들어보고 싶다. 새 법안이 사회안정의 주축이라는 중산층의 성취동기와 자극(Incentive)을 짓누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있는 것인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무언가 이룩하고 또 가질 수 있는 사회라야 국민 모두가 그 체제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아래 하나가 된다. 애써 이룩한 것이 7년 또는 10년 안에 흔적 없이 사라진다면 개인의 성취의욕은 어디서 나올 것이며 사회발전의 자극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부유세라는 것도 이름은 꽤 자극적이고 야심찬 것이지만 다분히 국민감정 무마용 같은 의심이 간다. 그런 법을 시행하고 있는 서독을 보면 세율0·5%로 행정비용 정도밖에 안 나 온다. 중세도 아닌 지금 부자 집 창문크기 따위를 재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세금은 세금이지 형벌이 아닌 이상 결국 세금을 내게 될 국민들의 찬반의견을 널리, 그리고 공정하게 듣고 법을 만드는 것이 새로 탄생할 법의 정당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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