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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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월이 되면 노는 날이 줄줄이 쏟아진다. 우선 추석연휴가 그렇고,10월 초순과 한글날이 또 연휴다.11월이 지나면 송년 무드 속에 12월 크리스마스도 연휴다. 그중에는 달력에서 저절로 짝지어진 휴일도 있다.
그러나 추석이나 신정, 구정 연휴는 모두 정부의 선심 덕이다. 물론 정부는 여론을 물어 한일인데 무슨 얘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눈감고 아웅 하기다. 세상에 노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를 물어 억척같이 일하는 것이 좋다고 할 여론을 찾을 수 있겠는가. 결국 정부가 앞장서서 놀자는 풍조를 부추긴 꼴이다.
요즘 관사들 자동차엔「과소비생활 삼가자」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늘어지게 놀면서 과소비를 삼갈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학위논문 감이다.
경제원론 교과서를 보면「생산의 3요소」라는 것이 있다. 첫째가 노동이고, 둘째가 자연(토지), 셋째가 자본.
바로 그 생산을 밀어 주는 노동의 가장 큰 동기는 개인적인 근면과 성실, 그리고 조직원으로서의 충성심을 빼놓을 수 없다. 근면과 성실은 절제와 인내, 그리고 스스로 각오한 고통 위에서 가능하다. 누워서 근면하고, 놀면서 성실하고, 편하면서 절제할 수는 없다.
우리사회가 이젠 생산을 소홀히 해도 된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동안 생산을 많이 했으니 좀 놀면 어떠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달나라쯤에서 온 사람이다.
고대 로마가 망한 것은 놀고 보자는 풍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폼페이우스 시대는 1백40일, 시저시대는 2백일, 로마제국이 망하기 직전엔 2백50일이 공휴일이었다. 하루 쉬고, 하루 논 셈이다.
아무리 우리사회가 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을 만났다고 해도 4천만의 동시연휴는 너무했다. 국민의 비위맞추는 것이 민주정치라고 해도 때로는 보다 나은 공동의 선과 이익을 위해 안 되는 것은 안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정부가 공연히 부채질한 허세에 가슴이 부풀어 국민소득 겨우 4천 달러의 나라에서 2만 달러 하는 나라의 휴일을 뒤쫓아가려고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노는 것보다는 이틀 벌어 하루 노는 것이 먼 훗날, 놀고 싶을 때 마음껏 놀 수 있는 국민저력의 축적이라는 것을 설마 모르지는 않을텐데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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