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믿을 수 없다" 북 김정일, 방북 미국인사에 불만 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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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김 위원장의 불만은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후이량위(回良玉) 국무원 부총리의 10일 평양 방문에서 분명하게 표시됐다. 미사일 발사를 중국에 미리 귀띔해 주지 않았던 북한은 중국의 설득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들의 면담마저 거절했다. 그리고 16일 중국은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산과 물이 잇닿은 인방(隣邦.이웃나라)'이라며 두 나라의 혈맹관계를 치켜 내세우던 양국 지도자의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중국-러시아를 잇는 동북아의 '북방 3각 공조'중 그 핵이라 할 북.중 관계가 심각한 균열 조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미국은 북.중 간의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대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양과 베이징의 불협화음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2400만 달러의 북한 자금이 직접적인 불씨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현실화되자 김 위원장은 중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1월 중국을 직접 찾았다.

북한 측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게 "중국이 미국의 부당한 행동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반응은 썰렁했다. 계좌 확인을 위해 마카오에 들렀던 김 위원장의 측근인 강상춘 노동당 서기실장(비서실장 격)은 중국 공안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나오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당시 상황과 관련, 이 소식통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중국으로선 북한의 위폐 문제를 감싸는 듯한 행동을 보일 경우 대외신용도 하락 등 자국에 미칠 파장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1월 중국 방문 때 비공식적으로 논의됐던 '경제 지원 보따리'가 제대로 건너오지 않은 것도 중국에 대한 실망감을 키웠다는 분석이 있다. 중국은 당시 현금 50억 위안(한화 약 6000억원)과 ▶신의주에 항구.호텔.교량 건설 지원 ▶신의주~평양 간 철도 복선화 ▶신의주~향산 간 고속도로 건설 같은 신의주 지원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이를 믿고 한 달 뒤 '기간공업 및 농업 3개년 계획'을 내부적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북한 관리들 사이에선 "중국 사람들은 말뿐이지 우리에게 지원한 게 뭐가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반면 중국에겐 북한의 잇따른 무모한 행동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이란 양날로 미국에 맞서 지역 맹주로 발돋움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동북아 정세 개입의 효과적인 명분을 주고 있다. 일본에는 당당하게 선제공격론을 내세우고 군사 대국화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게 하는 꼴이 됐다. 중국은 이런 북한을 내심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중 관계는 밀월 조짐도 엿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고 있는 G8 정상회의에서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잇따른 대북 압박에 고무된 듯 "후진타오 주석의 지도력에 감사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중국 군부의 2인자인 궈보슝(郭伯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초청으로 17일 미국을 방문하는 등 군사협력도 상승세다.

한.미.일 남방 3각 공조가 헝클어진 상황에서 북.중.러 북방 3각 공조도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근본적이고도 미묘한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런 국제정세의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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