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하루 만에 주가 반토막…좌파 포퓰리즘 귀환에 디폴트 공포 고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르헨티나 금융시장이 공포에 빠졌다. 좌파 포퓰리즘 ‘페론주의’로의 회귀 가능성이 짙어지면서다.

달러 환산 지수, 하루에 48% 하락 #70년간 세계 증시 역대 두 번째 낙폭 #페소화도 최저 수준...또 디폴트 나오나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12일 대선 예비선거 패배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PA=부에노스아이레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12일 대선 예비선거 패배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PA=부에노스아이레스]

1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증시의 메르발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7.93% 급락한 2만7530.80에 거래를 마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는 달러로 환산하면 48% 하락한 셈이다. 지난 70년 간 전 세계 94개 증시 가운데 역대 두 번째 최대 낙폭이다.

페소화 가치는 이날 장 초반 30% 가까이 급락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후 중앙은행이 1억500만 달러 규모의 보유 달러화를 매각하면서 15%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다. 블룸버그는 아르헨티나가 5년 안에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에 처할 가능성이 지난 9일 49%에서 12일 75%로 치솟았다고 분석했다.

폭락한 아르헨티나 메르발 지수. [연합뉴스]

폭락한 아르헨티나 메르발 지수. [연합뉴스]

금융시장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한 건 지난 11일 치러진 대선 예비선거 결과다. 외신에 따르면 좌파 연합 ‘모두의 전선’ 후보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전 총리가 득표율 47.7%로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직 대통령(32.1%)을 크게 앞섰다. 표 차이가 최대 8% 포인트일 거라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다.

외신은 페르난데스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2007~2015년 집권)에 주목한다.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은 좌파 포퓰리즘 ‘페론주의’의 계승자다. 전임자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도 한 그는 집권 당시 사적연금 시스템과 원유·가스회사인 YPF를 국영화하는 정책을 폈다. 이후 2014년 아르헨티나는 역사상 두 번째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번 예비선거는 군소 후보를 탈락시키기 위한 절차다. 하지만 박빙일 거란 예상과 달리 마크리 현 대통령이 크게 뒤지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마크리 정부의 시장친화적 개혁 정책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리 정부는 지난해 8월 국제통화기금(IMF) 긴급구제금융을 받은 뒤 나라 빚을 줄이기 위해 공교육 보조금을 삭감하고 연금개혁을 추진해왔다.

외신에 따르면 페르난데스 전 총리는 11일 예비선거 승리 소감으로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위한 연금과 건강권을 드높이고 은행으로 이익이 돌아가게 하지 않게 할 것이며 공교육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리 정부 정책을 뒤집겠다는 예고다.

아르헨티나 대선은 오는 10월 치러진다. 에드워드 글로섭 캐피털이코노믹스 연구원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기피하는 좌파 포퓰리즘이 돌아올 길을 닦았다”며 “페소화 가치가 달러당 70페소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주식과 채권도 심각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