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노 일본여인’ 전시회 취소…“시민 정서 고려”vs“친일 낙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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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보석박물관이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인’을 그린 작품 등의 전시를 취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물관 측은 국내에 확산한 반일 정서를 의식해 취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작가는 “비상식적이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중희 작가가 2012년 그린 작품 '일본여인'(크기 : 162.1x97cm, 재료 : 캔버스 위 아크릴과슈). [연합뉴스]

이중희 작가가 2012년 그린 작품 '일본여인'(크기 : 162.1x97cm, 재료 : 캔버스 위 아크릴과슈). [연합뉴스]

12일 익산보석박물관에 따르면, 지난 7일 개막하려던 원로 서양화가 초대전이 취소됐다. 박물관은 전시회에서 이중희 화백의 작품 16점을 다음달 22일까지 전시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이 화백의 ‘일본여인’이라는 작품이었다.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은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박물관은 이 그림이 반일 정서를 자극할 것으로 우려해 이 화백에게 다른 그림으로 대체하거나 전시회 자체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화백이 “안 하면 안 했지, 그렇게는 못 한다”고 거절해 전시회가 무산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국내에서 반일 감정이 워낙 극에 달한 상태라서 그 그림이 예상하지 못한 불상사로 이어질까 봐 전시회에 공개할 작품을 교체하거나 일정을 변경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했다”며 “시민 정서를 고려해야 하는 행정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작품을 그냥 내걸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시회가 무산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이에 대해 “이는 우리의 문화의식 수준을 나타내는 비상식적이며 어처구니없는 일로, 그 요청은 수용할 수 없었다”며 “정치와 문화예술은 구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의 국민 정서를 고려해 ‘일본여인’을 다른 작품으로 대체하는 것은 검토할 수도 있었다”며 “그러나 박물관 측은 처음부터 일본에서의 전시회 활동 이력을 문제 삼으며 연기를 요청해왔다. 수십년간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우리나라를 널리 알린 원로 작가에게 친일 작가 프레임을 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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