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공권력투입, 강제해산은 보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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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여명으로 추정되는 노조원이 3~4층 사이 계단을 의자로 틀어막고 8대의 엘리베이터 작동을 중지시킨 채 4층 이상을 점거해 강제해산 때 불상사를 우려한 때문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4시쯤부터 본사 주변에 배치한 69개 중대 6900여명을 정.후문과 측문 등 4곳을 통해 진입했다. 소방차 8대와 구급차 5대, 매트리스 등도 준비했다.

그러나 건물 안팎에 포진해 있던 노조원은 흔적조차 없었다. 이미 자정쯤 모두 4층 이상으로 올라간 뒤였기 때문이다. 경찰이 본사 건물에 도착하기 전 주변에는 술 취한 노조원 수 명만 눈에 띄었다. 곳곳에 쇠파이프 등으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었으나 허술한 모습이었다.

1층 로비에는 생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비계용 쇠파이프 등 시위용품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2층에도 소화기.쇠파이프, 먹고 남은 도시락, 휴지 등이 널브러져 마치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2층 엘리베이터 불은 꺼져 있고 그 속에는 문을 닫을 수 없게 막대 등이 끼어 있었다. 방화셔터는 고장나 있고 소방호스도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경찰 진입이 임박하던 이날 오전 4시30분쯤 마지막으로 건물을 지키던 김태만 상무 등 7명이 경찰의 연락을 받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김 상무는 "밤새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른 한 간부는 "노조원들의 요구에 못 이겨 사무실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건물 층마다 2~300여명씩 2700여명이 진입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경비용역업체 박창배씨도 "노조원들끼리 사흘치의 생수.컵라면.건빵.초코파이 등 비상식량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부서진 철문을 통해 비상계단으로 올라가자 3층과 4층 사이 계단에는 사무실 의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위쪽에서는 노조원들의 격한 음성이 들려왔다. 계단 틈새로 유리병을 던지기도 했다. 다른 쪽 계단도 마찬가지였다. 계단 2곳과 엘리베이터 8대의 작동이 완전 봉쇄돼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찰의 증거 수집조는 지하 2층에서부터 이동 가능한 3층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카메라.비디오 촬영을 했다.

건물을 포위한 경찰은 오전 5시14분쯤 1층 로비로 진입했다. 그러나 1층에 있던 생수와 쇠파이프 등을 치우는데만 30여분이나 걸렸다. 지게차로 더미 채 운반된 생수는 8000여개나 됐다.

그 사이 지하에서 3층 사이 건물 구석에서 잠자던 노조원 8명이 내려오다 연행됐다. 일부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4층으로 올라가려 했으나 막혀 있었다고 털어놨다.

오전 6시 경찰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성억 포항남부경찰서장은 "건물 외부를 장악하는 1단계 작전을 완료했지만 내부 진입여부는 15일 오전 중에 상황판단을 해 다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서장은 "큰 부담을 느끼고 있고, 피차간 변수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작전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불상사를 우려해 강제해산을 일단 보류하고 자진해산을 최대한 설득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1단계 작전을 '공권력 투입'으로 봐도 되냐는 질문에 이 서장은 "그렇게 봐도 된다"고 짧게 말한 뒤 자리를 옮겼다. 포항=황선윤<기자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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