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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검찰총장이 양복저고리를 흔들었다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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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양복저고리를 벗어 흔든 건 지난 5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전임 검찰총장은 그 짧은 퍼포먼스에서 무엇이 양복을 흔드는지 잘 보라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 관련 ‘정부합의안’에 반기(反旗)를 드는 걸 설명하는 자리였지만, 검찰이 권력에 휘둘린다고 꼬집는 기자에게 뭔가 항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권력에 휘둘려 정치검찰의 오명(汚名)을 뒤집어쓴 책임을 검찰 혼자 질 수 없다고. 이를 두고 “권력에 일갈하는 기개”로 봐 준 언론인도 있지만, 나는 그 몸짓에서 외로움을 읽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에 거스르고 있으니 외롭지 않을 리 없다. 수사권 조정의 대세를 바꿀 수 없으면서도 이런저런 논리를 내세우다가 조직이기주의로 찍히게 되는 처지가, 노무현 정부 시절과 흡사하다. 2004년 대검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반발해 당시 총장이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가 지탄을 받으면 내 목을 먼저 치겠다”라고 일갈하자, 그 다음 날 총장의 임기는 개혁에 반발하라고 둔 게 아니라고 대통령이 응수했다. 임명권자에게 등을 돌리는 결기로 개혁을 일시 멈추게 했던 건, 중수부가 벌인 수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리라.

그런 결기도 없이 양복을 벗어 흔들다니. 좀 처연하지 않은가.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수사권 조정의 대세가 굳어져 가는 걸 지켜보며 가슴앓이를 많이 했을 텐데, 이런 외로움의 몸짓밖에 보일 수 없었을까.

법의 길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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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다. 그 자리에 오르는 순간 혼자 감당해야 한다. 변화의 압박이 거셀수록 외로움이 더 클 거다. 개혁의 강풍 앞에 지레 엎드리는 건 아닌지, 수사외압에 맞설 의지가 있는지 전국 검사들의 눈길이 쏠릴 게 뻔하다. 권력 핵심부와의 신경전도 벌어질 것 같다. 개혁 흐름에 맞서며 서로 긴장이 고조될수록 그쪽에선 ‘산 권력’에 칼을 들이댈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정치적 난국(難局)을 돌파하는데 검찰수사를 앞세우면 난감해질 것 같다.

내부 신망을 잃어 총장이 겉돌면 외로워질 수 있다. 중수부 폐지 이후 대검의 직접 수사가 없어진 만큼, 중앙지검 등 일선 지검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수사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중립에 대한 총장의 의지가 확고해도 일선에서 방패막이가 돼 달라고 손을 벌려야 역할이 생긴다. 총장을 믿지 못해 일선에서 외압을 끌어안고 끙끙댈 수도 있다. 그러다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가면 폭망의 길이 된다.

정치권의 검찰 흔들기에 맞서는 것도 외롭긴 마찬가지다. 검찰이 바로 서라고 입으로 성원하면서도 뒤로는 흔드는 게 그들의 속성이다.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건, 반대 세력을 누르는 데엔 검찰을 앞세우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1995년 대검 중수부가 나섰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수사 당시, 여당의 K 사무총장이 연일 기자간담회를 하며, 자신의 가이드라인에 수사가 따라 오는듯한 말을 쏟아냈다. 때로는 대통령과 교감한 것처럼 포장했다. 당시 수사가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총장이 권력에 휘둘리는 걸로 오해받기에 십상이었다.

결국 국민의 신뢰에 달려있다. 정권의 비위를 맞춘다고 의심하며 등 돌린 국민이 많으면 겹겹의 외로움이 더 무겁게 조여 올 거다. 임명권자에게 등을 돌리는 건 피하고 싶겠지만, 총장은 때로는 그런 외로움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기 동안 신뢰를 되찾지 못했으니, 작심하고 양복저고리를 흔들어도 그저 외롭게 보일 뿐이다.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