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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아들은 엄마를 쳐야 했다···종말 피해 갔더니 '악몽의 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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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55)에게 2014~2016년은 악몽이었다. 자신이 다니던 경기도 과천시의 교회 담임 목사 신모(60·여)씨의 말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신 목사는 신도들에게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지진, 기근 등의 동영상을 보여주며 "곧 종말이 올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는 "이런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곳이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공화국"이라며 이주를 권했다. A씨는 신 목사의 말을 따라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2014년 7월 피지로 왔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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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일을 겪었다. 여권을 뺏겼고 남녀로 분리된 집단생활로 아내 B씨(44)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교회는 농업·요식업·미용업·건설업 등으로 나눠 사람들을 비치하고 부장과 팀장을 선별해 사람들의 생활을 관리했다.

'귀신 쫓는다' 폭행하며 종교의식

이상한 의식도 했다. 교회를 비방하거나 일을 하면서 실수를 한 사람을 고발하도록 하고 그 사람을 폭행하는 '타작마당'이었다. 신 목사는 "인간이 죄를 범하는 이유는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라며 "곡식을 타작해 쭉정이를 골라내는 것처럼 신체와 정신을 타작해 귀신을 떠나게 해야 한다"며 둥글게 둘러앉도록 했다. 한 사람을 지목해 죄를 고백하게 하고 그 사람의 가족과 다른 신도들에게 폭행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타작마당'은 매일 이뤄졌다.

A씨도 곧 '타작마당'의 대상이 됐다. 농작물을 재배할 때 화학 비료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30~40차례에 걸쳐 뺨을 맞았다. 말을 퉁명스럽게 한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감금되기도 했다.
신 목사 등은 "A씨가 귀신이 들렸다"며 A씨의 아내 B씨에게 남편을 폭행하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B씨가 남편을 살살 때리자 이들은 B씨를 폭행했다. 또 이발기로 B씨의 머리를 삭발하기도 했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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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부모 폭행하도록 강요도

이들은 자신들을 '성도'라고 표현하며 피지 이주를 위한 비자 취득 목적으로 한 명당 3000만원을 요구하거나 전 재산을 처분하도록 했다. 한 신도는 1억2000만원을 신 목사에게 건넸다고 한다.

신 목사 등은 "귀신을 쫓는다"며 '타작마당' 등을 통해 폭행을 지시하거나 직접 가담했다. 한 신도의 여자관계를 문제 삼으며 이 신도에게 친절하게 대한 다른 신도에게 폭행을 지시했다. 장모가 폭행당한 것에 항의하는 사위를 집단으로 때리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먹을 휘둘렀다.
남편이 아내를, 자식이 부모를 때리도록 지시하고 심지어 갓난아이와 노인을 폭행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타작마당엔 10대들도 참여하도록 했다. 일부 10대 신도들에게 부모 등을 폭행하게 하거나 이를 지켜보게 해 신체적·정서적 학대를 했다. 이를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신 목사는 "지금은 말세니 학교에 가봤자 배울 것이 없다"고 신도들에게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도록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범행은 일부 피해자들은 피지공화국 수바에 있는 대한민국 영사관으로 도주, 탈출에 성공하면서 알려졌다.

법원 "종교 명목 위법 행위는 엄벌해야"  

교회 신도들을 피지로 이주시키고, '귀신을 쫓는다'며 폭행을 지시한 신 목사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목사에게 적용된 혐의만 공동상해, 특수폭행, 중감금, 사기 등 7가지에 이른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형사3단독 장서진 판사는 공동상해, 특수폭행, 중감금, 사기,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신 목사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신 목사를 도와 같은 혐의로 기소된 선교사와 교인 등 5명에 대해서는 징역 6월∼3년 6월을 선고하고, 이들 중 혐의가 비교적 가벼운 2명의 형 집행을 2년간 유예했다.

앞서 신 목사 등은 2014년 말부터 2017년 8월까지 교인 400여 명을 남태평양 피지로 이주시켜 생활하면서 '타작마당'이라는 자체 종교의식을 앞세워 신도 10여 명을 30여 차례에 걸쳐 폭행하고 감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신 목사는 "타인에게 성도들을 폭행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고 이를 보고받은 적도 없다. 폭력·가혹 행위도 없었다"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법원은 신 목사 등이 공모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다.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법원 이미지. [연합뉴스]

장 판사는 "피고인들은 신앙생활을 위해 교회에 모인 피해자들에게 종교적 권위를 앞세워 폭행·가혹 행위 등을 했다"며 "오랜 기간 교회라는 집단 내에서 폭력이 이뤄졌고 가족과 동료끼리 고발하고 폭행하도록 하면서 피해자들이 무력하게 피해를 봤고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한다'라거나 '동의를 얻었다'고 변명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을 뿐 피해자들의 피해회복 등은 고민하지 않고 있다"며 "사법기관이 종교활동에 관여함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종교라는 명목으로 위법행위를 범한 경우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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