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렌즈 회사, 반품 없는 일방적 계약 해지” vs “계약서 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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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리점이 전국 안경원에 배포한 호소문. [사진 한국 대리점 A사]

한국 대리점이 전국 안경원에 배포한 호소문. [사진 한국 대리점 A사]

일본의 안경‧렌즈 제작 업체가 16년간 거래했던 한국 가맹점들에 한 달 전 계약 해지를 통보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리점 측은 “갑질”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호야렌즈 측은 “계약서 해지 조항에 따른 것이며 오히려 대리점들의 편의를 봐줬다”고 반박했다.

29일 한국 대리점 A사에 따르면 호야렌즈는 지난달 24일 “7월 28일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통보서를 보내왔다. A사와 호야렌즈는 2003년 계약을 맺고 16년간 거래를 이어왔다.

A사는 이에 지난 16일 “일방적으로 30일 전 대리점 물품공급 계약 종료를 통보해 어떠한 준비도 못 했고 사업 지속에 중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16년간 호야의 저변 확대를 위해 피나게 노력했던 우리의 기여 가치는 묵과됐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지만 호야렌즈 측은 물품 공급 계약서의 ‘계약 해지 필요시 1개월 이전에 통보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계약 종결에 관한 확약서를 보내왔다는 것이 대리점 측의 주장이다.

호야렌즈가 보낸 계약 종결에 관한 확약서 내용. [사진 A사 제공]

호야렌즈가 보낸 계약 종결에 관한 확약서 내용. [사진 A사 제공]

호야렌즈 측은 확약서에서 “7월 28일자로 물품 공급 계약은 종료됨을 확인한다”며 “다만 계약 종료 후 6개월 동안은 추가 물품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일체의 반품은 없으며 현재의 할인율을 유지하고 거래처 정보 리스트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담겼다.

A사 관계자는 “안경 렌즈 특성상 도수가 다른 100개의 상품이 하나의 세트다. 재고를 많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반품도 받아주지 않으니 창고에 있는 10억원 상당의 제품들은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할인율은 유지하면서 알아서 시장에 물건을 팔라는 것인데 그러면서 거래처 목록을 가져간다는 건 우리의 판매 정보까지 빼간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반발했다.

A사는 지난 26일 ‘대리점에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 갑질한 일본기업 호야렌즈’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전국 안경원에 배포했다. A사는 호소문에서 “일본기업 호야렌즈는 전체 한국 대리점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직영체제로 전환했다”며 “호야는 재고를 일절 책임지지 않겠다고 통보해 피해는 한국 대리점과 한국 소매점이 떠안게 됐다”고 밝혔다.

이 문건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일본 렌즈 업체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퍼지기도 했다. A사에 따르면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수도권 대리점 2곳은 지난 26일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를 위한 법적 검토를 마쳤다. 지방의 대리점은 추후 합류할 예정이다.

하지만 호야렌즈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호야렌즈 관계자는 “대리점을 통한 물품 공급은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유통체제를 혁신해 신속하고 원활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직영화를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또 계약 종료 과정은 계약서 내용에 맞춰 법률 자문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야렌즈가 공개한 대리점과의 계약서에는 ‘계약의 해지가 필요한 시에는 상호 1개월 이전에 통보하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또 ‘반품은 원칙적으로 없으며 렌즈의 결함이 발견될 때에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 손실 처리한다’는 조항도 있다.

호야렌즈 측은 “계약서상 반품을 수용할 의무가 없음에도 대리점의 원활한 재고 소진과 경영 안정을 지원하고자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에 걸쳐 물품공급 연장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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