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한나라 전대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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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左)이 13일 오후 전남 순천의 선암사를 찾아 금용 주지스님과 악수하고 있다. 대표 경선 과정에 불만을 표시한 이 최고위원은 이틀째 당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순천=연합뉴스]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은 13일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 불참했다. 그는 전날 강재섭 대표가 주재한 첫 최고위원회의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진 대표 경선 후유증이 사흘째 이어진 것이다.

이 최고위원은 당 관계자들과의 연락도 끊었다. 대신 전남 순천의 사찰(선암사)에 머물렀다. 그는 "5.31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정권교체하라고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줬는데 전당대회의 모습을 보면 결코 대선 승리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 경선에서 패한 뒤 "대리전은 박 전 대표 쪽 공작" "색깔론이다, 대리전이다, 이런 구태정치를 온몸을 바쳐 청산하겠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강 대표의 굳은 표정 역시 사흘째 계속됐다. 그는 의원총회에서 "저의 과거 전력이나 생활태도가 당에 마이너스 효과를 내는 부분이 있다면 저 자신이 철저히 반성하고 혁신하겠다"고 했다. 강 대표는 "누가 누구를 밀었고, 누구를 밀지 않았고 하는 것은 내 마음엔 이미 없고, 전당대회는 추억일 뿐"이라며 "모든 가치를 용광로에 넣어서 융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전날 출입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이재오 후보의 패배는 작전 미스"라며 여유를 보였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강 대표는 당이 더 이상 흐트러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새로 구성된 한나라당 지도부가 내 눈으로 봐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며 "소장파의 대거 등용으로 모자란 부분은 채워주고 지나친 부분을 깎아내겠다"고 했다. 이명박 전 시장과 12일 통화한 사실을 부각하면서 "대선 후보 선출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헌.당규대로 대선 6개월 전에 후보를 뽑는 것은 너무 이를 수 있다"는 이 전 시장의 입장을 배려하는 듯한 뉘앙스다.

곧 있을 당직 개편에서 소장파와 비주류를 등용하고, 대선 공정관리 프로그램을 조기에 내보인다는 게 강 대표의 구상인 듯하다.

하지만 구상대로 후유증이 수습될지 증폭될지는 미지수다. 장고에 들어간 이 최고위원이 돌아오는 다음주 초가 그 고빗길이 될 전망이다.

◆ 박 전 대표 견제심리 작용한 원내대표 경선=대표 경선의 후폭풍은 김형오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맞붙은 원내대표 경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접전이 되리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상대적으로 '친박'의 색채가 옅은 김형오 의원이 큰 표차로 승부를 갈랐다. 당내에선 "원내대표까지 박 전 대표 측이 싹쓸이할 경우 당의 분열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정서가 의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최상연.서승욱 기자 <choi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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