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기는 GATT 3개 조항…‘후쿠시마 어퍼컷팀’ 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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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참석을 위해 22일 출국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참석을 위해 22일 출국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23~24일 이틀간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참석한다. 일반이사회에는 보통 회원국의 제네바 주재 대사가 수석대표로 참석하지만, 정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WTO 업무를 담당하는 고위급 책임자가 현장에서 직접 대응할 수 있도록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22일 밝혔다.

오늘 WTO 이사회 한·일 격돌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제외 #‘국제 통상질서 위반’ 강조 전망 #일본은 “안보 예외” 2개항이 무기

김 실장은 2015년부터 올해 4월까지 약 4년간 이어져 온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관련 WTO 분쟁에서 한국 측이 승소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또 2006년 WTO 세이프가드위원회 위원장을 경험하는 등 WTO 통상법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일본 외무성은 야마가미 신고(山上信吾) 경제국장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달 초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나선 뒤 양국 통상 고위직이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출허가 강화 뒤 통상 고위직 첫 대면

이번 일반이사회는 WTO 분쟁 해결 수단과는 별개다. 그렇지만 2년마다 개최되는 장관급 각료회의를 제외하면 WTO 최고 의사결정 기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회의다. 우리 정부는 여론전을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WTO 규범에 어긋나는 부당한 조치임을 지적하고, WTO 회원국 이해를 제고하는 등 해당 조치 철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는 WTO 제소 준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WTO 분쟁해결 절차에 들어가면 한·일 양국은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최종 결정까지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국제통상법적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양측이 날 선 공방을 벌일 부분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조문 가운데 5개 조항이다. 이 가운데 3개 조항은 한국의 ‘창’으로, 2개 조항은 일본의 ‘방패’로 쓰일 논거가 될 전망이다.

한국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로는 우선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11조 1항’이 꼽힌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는 사실상 수출제한 조치에 해당할 소지가 많다. 일본은 ‘수출규제가 아닌 개별 수출허가제로 전환한 것’이라고 반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맞받아치기 위해서는 일본의 규제로 실제 우리의 수입 물량이 감소했고, 이것이 일본의 조치에 의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

분쟁 결정 최소 2년 … “외교로 풀어야”

1조1항도 한국이 활용할 수 있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는 최혜국대우를 규정한 조항이다. 일본은 특혜를 부여하다 보통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외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특정 국가에 계속 특혜를 주다가 취소하는 것도 1조1항에 위배된다.

WTO 회원국 간에 ‘일관적이고 공평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통상 관련 제도·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10조3항도 한국에 유리하다. 일본이 한국만을 ‘타깃’으로 제재를 가했기에 이 조항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일본은 21조로 한국에 맞설 것으로 보인다. 21조는 WTO 회원국이 자신의 필수적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GATT상의 의무를 위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그간 WTO 분쟁에서 다른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최상급 ‘카드’였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를 자주 활용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을 증명할 어떤 구체적 증거도 내세우지 못했다. 이천기 KIEP 부연구위원은 “우리 정부는 이번 수출허가 강화가 사실상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서 또는 외교·정치적 마찰을 이유로 부과됐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또 다른 방패막이는 전략물자 수출통제 실효성 확보를 위한 예외조치를 인정한 20조다. 그러나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이해 당사국 간 합의 도출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일본이 이를 입증할 책임이 크다. 한국 정부가 WTO에 일본을 제소하면 우선 양국 간 협의가 시작된다. 협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분쟁조정 절차가 시작되며 최종 결정까지 2년 이상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다. 앞서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의 경우 최종 결정까지 4년가량 걸렸다. WTO가 우리 손을 들어주더라도 최종 결정 때까지 한국 기업의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KIEP는 상응 조치 같은 ‘맞불 작전’은 본격적인 무역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지속적인 양자·다자 협의 요청을 통해 일본과 외교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며 “이번 사안이 글로벌 가치사슬로 연결된 세계무역 전반에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적극 피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허정원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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