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일」의 원칙과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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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자주·평화·민주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은 새로울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기존입장의 재확인이지만 여기에 함축된 정책방향은 종래와는 다른 대북 강경선회를 느끼게 한다.
노 대통령이 밝힌 통일방안은 3단계로 되어있다. 즉 공존→민족공동체의 회복 및 발전→단일통일국가다. 노 대통령은 이 같은 3단계의 통일로 가는 과정도 민주적이어야 하고 최종 목표인 단일통일국가도 역시 민주국가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 같은 통일방안은 우리로서는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것이고 지금껏 우리정부가 추구해온 통일정책도 명칭이야 어떠했든 모두 같은 기본골격을 가졌다는 검에서 새삼 정책전환이라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 구상은 지금껏 정부가 통일정책의 대전제로 삼아온 7·4남북공동성명의 일부에 대한 우리정부의 재해석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7·4공동성명의 3개항 중 자주와 평화는 이번에도 유보 없이 받아들여졌지만「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민족대단결」이란 제 3항에 대해서는 민족대단결을 추구하되 그 과정도 민주적이어야 하고 그 결과인 통일조국도 연방제가 아닌 단일 민주국가여야 한다고 못박음으로써「이념과 체제를 초월한」어떤 형태의 것이든 통일을 우선 추구한다고 해석될 여지를 배척했다.
이는「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 추진을 명시한 헌법 4조와도 부합되는 것이지만 최근 잇단 밀입북과 이념혼란에서 보듯 우리 내부의 통일지상주의에도 쐐기를 박는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그 동안 우리사회에는 어떤 형태든 통일만 되면 좋다는 식의 무분별한 통일지상주의가 활개를 치는 바람에 통일논의에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정부는 이번에 자유민주체제에 의한 통일의 추진만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젓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우리측의 선제적 양보로 북한의 개방을 촉진한다는 기존정책이나 7·7선언과는 달리 이번 통일방안은 북한에 대해 통일장애요소의 제거를 선결요건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가령 적화통일 노선의 포기, 북한동포의 인권보장요구 등은 그 동안 우리측이 취해온 북한 내정불간섭정책을 수정한 것으로 앞으로 대북정책에 있어「맏형」으로서 양보만 하지 않고 공세적으로 나가겠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새 통일방안은 그 동안 우리에겐 자명한 것으로 여겨져 오던 문제들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용, 선언한 데 뜻이 있고 여기에는 국내의 이념 및 통일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필요성이 우선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따라서 새 통일방안의 타당성·현실성은 인정되지만 체적으로 이런 목표를 추진할 정책방안이 있느냐는 점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통일에 이르는 중간과정으로 설정한 민족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어떤 방안을 정부가 갖고 있으며, 그 다음 통일로 넘어가는 단계는 어떤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또 민주체제에 의한 통일과 통일을 가로막는 북한정책의 변화를 요구함으로써 남북대화나 교류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 기본 골격을 바탕으로 9월에 구체안을 낼 예정이라니 두고봐야겠지만 국민의 통일 열망을 수용, 정책화하는 방안과 남북간 긴장을 높이지 않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갈 수 있는 방안 등에 관해 좀더 현실적인 접근이 있어야 된다. 우리는 정부에 대해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특히 시행착오의 대가가 엄청나다는 점을 명심하고 명분과 현실성을 갖춘 방안을 제시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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