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코리안] "영하 40도 뚫고 아파트 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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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땅 시베리아에 멋진 한국 아파트를 선보이겠습니다."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 하바롭스크시(市)에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고 있는 계룡건설 이철호 지사장(57.사진).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두해를 지낸 그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지난달 27일 하바롭스크에서 만난 이 지사장은 "7월 중 착공 허가가 떨어지면 곧바로 공사에 들어가 2008년 말께 완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하바롭스크 시내 중심가인 티카폴체바-샤표르니 거리에 들어설 예정. 지하 2층, 지상 23층 건물 2개 동에 전체 214가구 규모로, 하바롭스크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건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계룡건설이 최초의 해외 주택사업을 결정하고 현지법인 '계룡-하바롭스크'를 설립한 것은 2004년 8월. 그 후 토지사용권 확보, 기본설계 등의 절차에 무려 2년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선 6개월이면 충분한 일인데도 말이다.

관료주의가 문제였다. 상하수도.전기.난방.통신 등 인프라 시설들을 건설부지로 끌어오기 위해 해당 관청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정을 해야 했다. 뒷돈에 익숙한 관료들은 서류 절차마다 '기부금'을 요구하기 일쑤였다. 모델하우스 건축허가를 받는 일도 일반 건축허가만큼이나 까다로웠다. 시청 간부는 러시아선 관례가 없는 모델하우스에 욕심을 내고 "시청 뒷마당에 지으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쓰린 배를 움켜잡고 관청 직원들에게 보드카 접대를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20년 이상 외국 건설현장을 누빈 '베테랑'이지만 러시아의 부조리한 건설관행엔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은 시간이 문제다. 11월부터 4월까지 1년의 절반이 영하 20~40도를 오르내리는 이곳에서 정작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간은 연 6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자재비와 인건비도 만만치 않다. 혹한 때문에 건물 벽 두께가 최소 40cm 이상이 돼야 하는 등 한국과 다른 건축 기준 때문에 자재비가 많이 든다. 인건비도 현장 노무자들의 보험을 건설사가 부담해야 돼 별로 싼 편이 아니다. 또 분양 미달 사태가 빚어지지 않도록 '판촉'도 해야 한다. 그는 "그동안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서도 "그러나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공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바롭스크=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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