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깎자”에 이번엔 노동계가 심의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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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경영계가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의 인하 방침을 고수했다. 노동계는 이에 항의하며 최저임금위원회 심의를 보이콧했다. 근로자 위원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위는 12일쯤 ‘2020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방침이다.

경영계 4.2% 깎은 8000원 고수 #근로자 위원들 “삭감안 철회를” #불참해도 11일에는 의결 가능

최저임금위는 9일 제10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근로자 위원은 전원 불참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삭감안을 즉각 철회하고 상식적인 수정안을 우선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 위원들은 지난 3일 내년 최저임금으로 8000원을 제시했다. 올해(시급 8350원)보다 4.2% 깎은 금액이다. 최저임금 삭감안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9년 -5.8%를 제시한 이후 10년만이다.

근로자 위원들은 “경제가 국가 부도 상태에 놓인 것도 아님에도 물가 인상과 경제성장조차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마이너스로 회귀하자는 것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근로자 위원들은 올해보다 19.8% 인상된 시급 1만원을 요구했다.

경영계도 맞대응에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중견기업중앙회 등 3개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은 이제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며 “정치적 입장으로 제시된 노동계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어려운 경제·기업 입장에선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마이너스로 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근로자 위원의 불참에 따라 사용자 위원들은 이날 제시할 예정이던 수정안을 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사용자 위원은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경제 사정마저 엄중하다”며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주기 위해서라도 상징적인 인하는 불가피하고, 추후 수정안을 내더라도 그 방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근로자 위원의 불참에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11일까지는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근로자 위원이 불참하더라도 11일에는 심의를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위가 의결하려면 근로자나 사용자 위원 중 3분의 1 이상이 출석해야 한다. 다만 두 차례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참석자만으로 의결이 가능하다. 근로자 위원이 9일과 10일 전원회의에 불참하더라도 11일에는 심의·결정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위 관계자는 “11일 내년 최저임금을 가급적 결정하되 늦어지더라도 12일 새벽에 회의 차수를 변경해 매듭짓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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