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폭행’ 코치 재임용한 지자체…"반대하면 향후 재계약 불이익" 경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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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에 출범한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사무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저동 국가인권위원회에 출범한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사무실 [연합뉴스]

소속 선수를 폭행한 코치를 다시 채용한 지방자치단체의 행위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4일 인권위는 시청이 소속 실업팀 A코치의 선수 폭행ㆍ음주 강요ㆍ폭언 등의 전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1년 만에 A코치를 다시 채용한 것은 인권 침해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운동부 지도자 등을 채용할 때 폭력ㆍ성폭력의 전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자격요건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김해시청 필드하키팀을 구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김해시청 필드하키(성인팀)팀 코치에게 폭행당한 선수가 부상을 입고 선수 생활까지 그만둘 지경에 처했다”며 “이런 코치를 김해시청에서는 지도자로 다시 채용해 현재 팀이 해체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 대한 진정이 인권위에 접수되면서, 지난 2월 구성된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특조단)이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A코치가 선수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거나 회식자리에서 음주를 강요했고 ▶시청 담당 공무원이 A코치의 채용을 반대하는 선수들에게 ‘향후 재계약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경고장까지 공식 발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권위에 따르면 A코치는 2015년부터 17년까지 하키팀 코치로 재직했고 18년 팀을 떠났다가 19년 다시 채용됐다. 이 때 시청은 자체 조사 결과 2017년 12월 이미 A코치의 폭행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게 인권위 측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시청 소속 B과장은 적극적으로 A코치의 채용을 추진했다. 통상 코치진은 해당 팀 감독의 추천에 의해 채용되는데, 감독에 A코치의 추천을 강요하거나 재 채용에 반발하는 선수들에게 “살인자나 절도자가 아니면 재임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에 따르면 A코치는 이미 2015년 선수를 폭행했다가 고소당해 폭행죄로 벌금 50만원의 처분을 받았고, 17년에는 다른 선수에게 욕설을 하고 주먹으로 가슴부위를 친 후 멱살을 잡는 등 크고 작은 폭행 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 체육계 내부의 자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A코치에게 피해를 입은 선수가 대한체육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이는 해당 지역 체육 협회로 이첩됐고, 결국 ‘무혐의’로 결론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보통 폭행의 경우 1년 이상 자격 정지 처분이 나오는데 무혐의가 나온 것은 의아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인권위가 지난 2월 25일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발족시킨 후 스포츠분야에서 제기된 60여건의 진정 사건 중 첫 번째로 권고까지 한 사건이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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