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50주년 에세이 공모] 일반부 장려상 임정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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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의 집 앞에 서면 멀리 천산산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전 우리의 핏줄을 가진 한 장군이 당나라군을 이끌고 천산산맥을 넘어 이 곳까지 진출했다. 그가 바로 고구려인 고선지 장군이다. 그런데, 왜 고선지는 조국 고구려가 아닌 당나라의 장군으로 이 곳에 왔을까?

7세기 동북아는 격변의 무대였다. 중국을 통일한 신흥 강국 당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국력을 증강해 나가고 있었던 반면, 700년 역사의 고구려는 대당정책을 둘러싸고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와 영류왕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간 내분으로 국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내홍으로 허약해진 고구려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나갔다. 고구려는 남쪽의 백제와 연결하여 당나라에 대항했으나, 당나라와 신라의 끈질긴 공세 앞에 결국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고선지의 조부를 비롯한 많은 고구려인들이 당나라로 끌려가 다시는 고국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역사학자 EH Carr에 의하면, 역사로부터 배우는 자는 현명한 자이나, 자기 경험에만 의존하는 자는 우둔한 자라고 한다. 타쉬켄트의 집 앞에 서서 고구려의 멸망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가 중차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는 19세기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라는 유쾌하지 못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6.25 전쟁 중이던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한국과 미국은 동맹관계로 발전했다. 주한 미군은 한-미 동맹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한-미 동맹의 강화는 우리에게 바람직한 측면과 함께 불가피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경제발전이 전자라면, 한반도의 현상유지는 후자에 속한다. 냉전시기 주한 미군은 북한의 대남 침략 억지 이외에도 대소련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주한 미군이라는 안보우산 아래에서 한국은 1960년대 초반 최빈 농업국가로부터 오늘날 모범적인 공업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냉전의 종식 및 북한의 약화와 함께 주한 미군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는 정치·사회세력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주한 미군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안보우산의 제공자라는 성격보다는 군사독재와 한반도의 현상유지, 즉 분단의 고착을 야기한 요인으로 보는 세력이 대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세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2002년 6월에 발생한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및 같은 해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기존의 세력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새로운 정치·사회세력으로 뿌리 내렸다.

미국과 북한에 대한 기존 세력과의 시각 차이에 기인한 새로운 정치·사회세력이 출현한 것이다. 이들은 미국에 대한 외교, 군사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정책을 취할 것과 같은 민족인 북한을 포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 대다수는 더 이상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의 군사주권을 훼손시키는 미군의 전시작전권이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는 중국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국가목표가 한반도의 안정 유지와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의 발전과 평화통일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중국은 급성장하고 있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동아시아의 지도국으로서의 위치를 되찾으려 하고 있으며, 일본은 대중국 억지력을 확보하려는 미국에 업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 진출하려 하고 있다. 한국의 국력은 인접국 일본과 중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일본의 1/10, 중국의 1/3에 불과하다. 중국과의 경제력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오늘날 동족인 북한은 체제안보가 목적이라 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사회세력 가운데 상당수는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정부에 자주외교를 요구한다. 이집트의 전 대통령 나세르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범아랍주의에 바탕을 둔 자주외교를 추구하다가 미국 및 소련 모두의 눈밖에 난 끝에 국제 미아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세르의 예는 바람직한 정책과 가능한 정책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가 아무리 원하더라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라는 반민족적 발언을 하는 북한 지도층은 자기들이 원치 않는 방식으로는 절대 우리와 협력해 나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중국에 가까이 가려해도 중국은 미국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우리에게 제공할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을 경우,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과 중국의 경제적 흡인력 및 우리와의 문화적, 인종적 유사성이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천자국과 조공국 관계이던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북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진 정치·사회세력의 등장으로 인해 분열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추스르기 위해서는 이들을 포용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이들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대미, 대북한 정책을 제대로 수행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이들의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다소 호소력이 있는 주장은 가능한 범위내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이들의 주장대로 주한 미군과 한국군간 지금의 수직형 관계를 장기적으로 주일 미군과 일본군간 관계와 같이 병립형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작가 이문열이 얼마 전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밝힌 바와 같이 미국도 한국의 민족주의의 분출을 이해하고, 동아시아에서 중국, 일본과 함께 한국의 위치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당면한 북한핵 문제의 해결 등 우리나라의 생존과 번영, 평화통일의 달성을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자이자 전쟁 억지자로서의 주한 미군의 역할 인정 등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동맹관계의 유지 및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결코 부인해서는 안 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전 고구려인들이 대당 정책을 둘러싸고 내전을 벌일 정도로 분열한 결과, 결국에는 나라가 멸망하고, 고선지 장군의 조부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중국 곳곳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역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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