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50주년 에세이 공모] 학생부 대상 이창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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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요한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수십만의 사상자를 낸 한국 전쟁을 통해 한국과 미국은 ‘혈맹’ 관계를 구축했다. 공동의 적에 맞서 ‘생존’과 ‘자유’를 지켜낸 경험은 한미동맹에 다른 어떠한 요인보다 강한 결속력과 존재 이유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동맹 50주년을 맞는 오늘, 동맹은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문제는 그 도전 요인들이 외부의 강력한 적이라기보다 내부로부터의 수많은 의문과 반대라는 점이다. 특히 ‘평화’나 ‘민족’과 같은 구호를 앞세운 주장들은 대중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동맹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직 1950년대에 맞춰져 있는 동맹의 존재 이유와 가치 지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동맹에 대한 기본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전력 증강, 주둔지 관리 등의 구체적인 노력들이 올바르게 평가 받지 못하거나 양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어떠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 위에 서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포괄적인 관계의 동맹 강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상호 이해와 현실 인식의 공유

미시간 대학의 세계 가치 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한국은 ‘생존’과 ‘세속적’ 가치에 비중을 두는 반면 미국은 ‘자기 표현’과 ‘전통적’ 가치에 비중을 두고 있다. 역사적으로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고난을 겪었던 한국인들은 생존의 문제에 민감하다. 그러나 지역 안보, 인권, 세계 경제 질서 등 보다 세계적, 보편적인 가치의 구현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전략은 때때로 이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미 2사단의 후방 배치로 인한 안보 능력 약화뿐만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미국의 단독 공격 가능성에도 많은 한국인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을 이런 가치 충돌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와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공동의 가치를 정립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 이해의 바탕 위에, 국제 상황과 현실적 목표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양 국민 모두가 비용과 이득을 정확히 인식하고 무임 승차(free ride) 논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냉전의 종식이 기존 문제의 해결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냉전 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은 이 지역에 경제통합의 정도를 높였고,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증대시켰지만 여전히 북한 핵 문제와 양안 문제 등 다양한 잠재적 불안정성이 번영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확실한 전선이 사라진 대신 불확실성이 증가한 셈이다.

보편적 가치 정립을 통한 동맹의 발전

그렇다면 한미 양국은 어떠한 가치를 내세움으로서 여기에 어떻게 대응, 변화해야 하는가? 최근의 6자 회담에서 보듯, 북한 문제는 더 이상 남북한간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적 안보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이러한 안보 문제에 대응하는 한국의 지향점도 자신의 생존이라는 좁은 영역을 벗어나 국제적 공조와 그를 뒷받침하는 보편적 가치, 즉 지금까지의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와 같은 보편적 가치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역에서 보편적 가치의 지지자로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이 강화됨과 동시에 한미동맹이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동맹이 단지 국지적 안보가 아니라 핵심 가치를 세계에서 실현시켜나가는 관계로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테러리즘, 마약, 범죄와 같은 최근의 문제들은 이처럼 양국 동맹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통일 이후를 대비한다는 관점에 있어서도, 통일이 단지 ‘민족 내부’의 문제가 아니며 지역적, 국제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을 한국은 분명히 하고, 한미동맹이 현재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러한 국제적 관리에 핵심적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보편적 가치가 대가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유에도 대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미동맹이 표방해야 할 중요한 보편적 가치가 될 것이다. 양국은 한국전과 그 이전의 세계대전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나, 전후세대에는 이러한 점이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도자들이 번영의 기반을 제공하는 요인들에 대해 양국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그에 수반되는 비용의 불가피성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또 지키는 것이야말로 지도자들의 역할인 것이다.

한국이 보편적 가치로 지향점을 수정해야 한다면, 미국은 한반도 상황과 지역의 특수성을 보다 배려할 필요를 가진다. 즉 한국인들의 생존의 문제를 이해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역 내에서 실현시키는 속도를 관련국들과 충분히 협의하여 실현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동북아에서 이러한 가치를 공유하는 한, 미, 일의 조율기구로서 대북정책조정감독기구(TCOG)와 같은 제도가 앞으로 확대, 발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노력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대방을 지켜주는 일이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공동의 가치와 이해를 가진 동반자라면 서로가 최선을 다하게 될 이유가 충분하다. 서로를 알고, 또 보다 높은 차원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이미 개개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카투사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미군들이 서울 나들이도 하고 싶어하고, 한국에 대해 보다 알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양 국민의 서로에 대한 생각은 이러한 개개인들의 경험과 인식이 모여 형성되는 것일 게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한국은 보다 보편적인 가치의 지향을, 미국은 지역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 한미동맹은 국제 사회에서 보다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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