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내친구] '빗장 + 대포' 아주리는 무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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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파비오 칸나바로가 동료의 무동을 탄 채 월드컵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베를린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월드컵이 개막하기 직전 본선 참가 32개국 중 가장 어수선한 팀이 이탈리아였다. 유벤투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 A의 명문 구단들이 승부조작 스캔들에 휘말린 때문이었다. 승부조작에 관련된 대표선수들은 개인적인 징계와 소속팀이 3부리그로 강등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스위스와 평가전을 치렀고, 졸전 끝에 1-1로 비겼다. 거기에다 주전 수비수 알레산드로 네스타와 잔루카 참브로타가 개막 직전 다쳤다.

하지만 '아주리 군단'은 '본 게임'에 강했다. 가나와의 1차전을 2-0 승리로 이끈 후 결승에 이르는 동안 이탈리아는 본선 진출국 중 가장 균형 잡힌 공격과 수비를 뽐내며 5승2무(승부차기는 무승부로 기록), 12득점.2실점의 성적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이탈리아의 통산 네 번째 우승은 브라질(5회) 다음으로 많은 우승이며 '축구 대륙' 유럽에서는 '전차군단' 독일(3회)을 제치고 최다 우승국으로 올라섰다.

세계에 비치는 이탈리아 축구의 인상은 좋지 않다. 한 점 리드를 지키기 위해 경기 내내 틀어막기만 하는 축구, 승리를 위해 화려함이나 페어플레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세, 잘생긴 선수들이 아귀처럼 야비한 반칙을 서슴지 않는 모습 등이 이탈리아 축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잉글랜드.스페인과 더불어 세계 최고 프로리그인 108년 역사의 세리에A를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대표선수 23명 전원이 세리에A에서 뛰고 있다. 국가에서 자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금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는 월드컵 본선 32개국 중 유일하다. 이탈리아 팀 특유의 강한 수비는 세리에A 경기를 통해 갈고 닦은 것이다. 여기에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공격 철학이 더해졌다. 그는 선수들에게 "한 순간 6명이 공격에 가담해도 골키퍼 외에 4명이나 수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평가전에서 네덜란드를 3-1, 독일을 4-1로 대파할 때부터 2006년의 영광은 예견돼 있었다. 앞서고 있으면서도 후반에 수비수 대신 공격수를 투입하는 모습은 독일 월드컵에서 나타난 이탈리아의 가장 큰 변화였다. 2004년 리피 감독 부임 이후 이탈리아는 25경기 연속 무패(16승9무) 행진을 달리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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